[땅집고] 정부가 아파트 준공 후 집값이 15억원을 초과하더라도 중도금 대출 범위 내에서 잔금대출을 허용키로 했다. 현재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이 전면 금지돼 있다. 8월 이후부터 생애최초 주택구매자에 대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6억원 한도로 80%까지 허용할 방침이다.
즉, 올 하반기부터는 청약 시장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데 따르는 제약이 거의 사라진 셈이다. 분양가가 높은 아파트의 경우 자금이 모자라 청약을 포기하는 신청자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분양가가 낮은 아파트에 청약 경쟁이 과열되는 현상도 다소 누그러질 전망이다.
■ 생애최초 청약자 대출 숨통…대출 금지선 없애고, DSR 적용 안해
현행법상 아파트 분양가가 9억원을 넘기면, 중도금 집단 대출이 아예 불가능하다. 아파트가 준공한 이후에 가격이 15억원 넘는 주택에는 잔금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올해부터 입주자 모집공고를 한 단지는 잔금 대출 때 개인별 DSR규제도 적용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분양자들의 자금 마련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예컨대 분양가가 9억원 미만인 아파트를 생애최초 무주택자가 분양받는 경우 지역에 관계 없이 LTV가 6억원 한도 내 80%까지 적용되고, 이 주택이 준공 후 15억원 이상으로 가격이 올라도 중도금 대출 범위내에선 잔금 대출이 허용된다. 또 잔금 대출을 받을 때는 개인별로 강화된 DSR 규제(40%)도 적용받지만, 중도금 대출에선 적용받지 않는다. 이와함께 금융위는 총부채상환비율(DTI)·DSR 산정 시 배우자가 주담대가 없는 경우에만 소득 합산을 허용했으나, 주담대가 있더라도 소득 및 부채를 합산할 수 있도록 개선하기로 했다.
그동안 분양가가 15억원 미만인데도 아파트 준공 후 시가 15억원이 초과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장의 경우 금융회사가 이주비·중도금대출 취급을 거절하는 사례가 있었다. 어느 정도의 자금력을 갖추고 청약에 당첨된 수분양자가 대출을 받기 어려워 청약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았다.
올 상반기만 살펴봐도 서울에 분양한 민간 아파트 9곳 중 6곳이 미달했다. 강화된 대출 규제 영향으로 풀이된다. 강북 미아동 ‘한화 포레나 미아’, 강북 수유 ‘칸타빌 수유팰리스’, 관악구 봉천 ‘서울대입구역 더하이브센트럴’, 도봉구 ‘창동 다우아트리체’ 등이 미분양에 따른 무순위 청약이 진행됐고 일부 단지는 할인분양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3월 분양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는 총 216가구 중 195가구가 미분양됐다. 이후 4번에 걸쳐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미계약분이 남아 있다. 결국 시행사 측은 최초 분양가보다 약 10% 낮춰 할인 분양을 결정했다. 지난해 8월 분양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스카이’는 최초 분양 당시 평균 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43가구 중 27가구가 분양권을 포기했다. 시행사는 올해 6월까지 무순위 청약을 연거푸 진행했으나 완판하지 못했다.
반면 분양가가 저렴한 공공분양 아파트에는 청약자가 크게 몰렸다. 올해 5월 경기 시흥에서 분양한 ‘e편한세상 시흥장현 퍼스트베뉴’는 67가구 모집에 1만2726건이 접수돼 1순위 평균 무려 189.9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힐스테이트검단웰카운티’는 575가구 모집에 4만6070명이 몰려 1순위 평균 80.12대 1을 나타냈다. 이와함께 ‘파주운정디에트르에듀타운’(47.99대 1), ‘신영지웰운정신도시’(37.26대 1), ‘제일풍경채검단Ⅱ’(30.31대 1) 등 공공택지 아파트 경쟁률이 높았다.
■ 분양가 저렴한 단지 ‘청약 과열’ 해소엔 미흡…“기존 주택도 대출규제 풀어야”
정부의 이번 개편안에 따라 일부 아파트에만 청약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다소 완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명확한 한계도 있다.
현재의 잔금 대출 완화책은 분양가가 9억원 미만인 주택이 준공 시점에 이르러 15억원을 넘긴 경우에만 한정된다. 분양가가 9억원 이상이면 중도금 대출이 아예 불가한데, 이 규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9억원 이하에 분양한 아파트가 준공 시점까지 2~3년의 기간동안 15억원 이상 가격이 뛸지도 미지수다. 기존 주택에 대해서는 여전히 15억원의 대출 금지선을 유지하고, 개인별 DSR 규제가 강화된 점도 한계로 분석된다. 새 아파트 공급이 늘더라도 분양가가 낮은 일부 단지에만 청약자들이 과도하게 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무주택 서민들의 내집마련 기회가 확대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완화한 것의 근본 취지는 ‘로또 청약’ 등을 없애고 청약 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선 자금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출 규제를 완화해주는 정책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며 “다만 여전히 9억원이 초과하면 중도금 대출이 아예 나오지 않고, 기존 주택에 대해서는 대출 규제가 강력하기 때문에 일부 저렴한 아파트에 나타나는 과열 현상이 말끔히 해소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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