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리포트] “수도권 외곽 집값 떨어진다고?…여긴 너무 뜨거워요”
[땅집고] “이천 집값이 오르는 이유요? SK하이닉스에 다니는 근로자들 덕분에 전월세 수요가 워낙 짱짱하잖아요. 그러니까 갭(gap) 투자자들이 진입하기 딱 좋죠. 전국 방방곡곡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 인근 낡은 아파트를 1000만~2000만원 갭투자로 싹 쓸어갔는데, 이 갭이 5000만원 정도까지 벌어지면서 점점 산업단지에서 거리가 먼 저가 아파트까지 손길이 뻗치는 상황이 됐어요. 전월세 살다가 아예 아파트를 사겠다는 젊은층 수요도 많아요.”
지난 15일 전철 경강선 부발역에서 택시로 10분 정도 떨어진 ‘사동리현대아이파크’ 아파트. 1994년 입주해 낡은 아파트인데, 올 들어 6개월여 동안 총 78건 거래돼 이천시에서 거래량이 가장 많다. 집값도 상승세다.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1억500만원에 팔렸는데, 이달 2억900만원에 손바뀜하면서 실거래가가 처음으로 2억원을 돌파했다. 1년여 만에 집값이 두 배 정도 뛴 셈이다.
최근 수도권 외곽 지역 중심으로 집값이 작년보다 수억원씩 떨어지면서 시장이 침체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이천시 아파트값은 ‘나홀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천시 집값 상승률은 올 들어 누적 5.16%로 전국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집값 상승률 상위 10곳 중 유일한 수도권이면서 지난해 11월 셋째주부터 지금까지 집값이 82주 연속으로 상승 중이기도 하다.
■수도권에 보기 드문 비규제지역…외지인 갭투자자 몰려
이날 이천시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들은 “이천은 수도권 외곽 지역 중 거의 유일하게 실수요와 투자 수요가 꾸준하게 유입되고 있는 곳”이라며 “실수요자는 주로 도심 새 아파트를, 투자자들은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저가주택을 집중 매수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 집값 폭등으로 저렴한 수도권 외곽에 내 집 마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즉 실수요자들이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인천·경기로 밀려난 셈이다. 하지만 이천시는 다르다. 직원 3만명이 넘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하이트맥주, 현대엘리베이터 등 굵직한 일자리를 끼고 있어 수도권 외곽인데도 내 집 마련 수요와 전월세 수요가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6개월 동안 이천시로 전입한 가구의 직전 거주지를 보면 서울이 1636가구로 가장 많았다. 이천에 직장을 둔 서울 거주자들이 직주근접을 위해 이사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저가 주택에 대한 투자 수요도 상당하다. 이천시가 수도권에서 드문 비규제지역인 점을 노리고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매수하고 있는 것. 실거래가 기준 2억~2억5000만원 이하 아파트가 해당한다. 현행 세법상 다주택자라도 공시가 1억원 미만 주택을 사면 취득세 중과를 면제하고, 비규제지역에선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60%까지 허용되기 때문이다.
투자수요가 몰리면서 이천시 일대 저가주택은 씨가 마른 상황이다. 올 들어 이천시에서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아파트 1~3위 모두 공시가 1억원 미만이다. ▲1위 사동리현대아이파크 78건 ▲2위 이화1·2차 58건 ▲3위 안흥주공 42건 등이다. 집값도 연일 오름세다. 25평(전용 59㎡) 기준 ‘사동리현대아이파크’는 지난해 6월 1억500만원에서 이달 2억900만원으로, ‘이화1·2차’는 지난해 6월 9000만원에서 지난 5월 1억4300만원으로 각각 올랐다.
장은애 부발역한라부동산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갭투자자들이 대거 들어왔다. SK하이닉스까지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상급지 아파트인 ‘사동리현대아이파크’는 매매가와 전세가 격차가 5000만원까지 벌어져, 이제는 출퇴근 거리가 조금 멀지만 갭이 아직 1000만~2000만원인 ‘이화1·2’차나 ‘안흥주공’을 찾는 투자자들이 늘었다”면서 “지난주에는 멀리 포항에서도 투자 문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평택부발선 개통 호재…안흥·증포동, 부발읍 일대 집값 올라
이천시에 계획된 굵직한 교통 호재도 집값 상승 요인이다. 정부가 발표한 제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이천시를 지나는 ‘평택부발선’이 포함된 것. 평택부발선은 1호선 평택역에서 안성·이천을 거쳐 경강선 부발역까지 연결하는 53.8km 길이 노선이다. 지난해 8월부터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평택부발선이 개통하면 이천시 교통이 크게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올해 거래되는 이천시 아파트 단지마다 신고가 행진이다. 새 아파트가 몰려 있는 도심이면서 경강선 전철역이 가까운 안흥동·증포동, SK하이닉스를 끼고 있으면서 평택부발선 종착점인 부발역이 있는 부발읍 위주로 거래가 이뤄진다.
지난해 4월 6억5300만원에 팔리던 안흥동 ‘이천롯데캐슬골드스카이’(2018년 입주·736가구) 전용 84㎡가 올해 4월 7억4000만원에 거래된 후 현재 호가가 8억원까지 올라 있다. 부발읍 ‘현대성우오스타’ 146㎡는 지난해 4월 5억9800만원에서 올해 3월 8억4000만원으로, 약 1년 만에 집값이 40% 상승했다.
이천시 새 아파트 분양시장도 호조세다. 지난해 10월 분양한 ‘이천자이더파크’는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이 40대 1이었는데, 올 들어 분양권 거래만 38건 이뤄졌다. 이 아파트 84㎡ 분양권은 지난 5월 5억5750만원 최고가에 거래됐다. 이달 기준 호가는 6억5710만원으로 프리미엄만 1억2500만원 붙었다. 이선영 명진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올해 분양한 ‘휴먼빌에듀파크시티’도 평택부발선 호재로 분양권에 8000만~1억원 정도 프리미엄이 붙어 매물로 나와 있다”고 했다.
땅집고 자문단은 “지난 4년여 동안 서울·수도권 집값이 폭등 수준으로 올랐다. 그러다 보니 입지에 비해 집값이 과도하게 올랐던 수도권 외곽 아파트 집값이 먼저 조정기를 거치는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이천시의 경우 실수요와 투자수요가 함께 집값을 받쳐주고 있어 나름 ‘건전한 집값 상승’으로 볼 수 있다”며 “직주근접 수요가 받춰주는 한 이천시 집값은 앞으로 완만한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천=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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