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한국부동산개발협회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한 ‘2022 KODA 비전 컨퍼런스’에 이색적인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국내 디벨로퍼계를 이끌고 있는 전·현직 부동산개발협회 회장인 정춘보 신영 회장(1~2대 회장), 문주현 엠디엠 회장(3~4대 회장),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현 회장)가 한자리에 모인 것. 3명은 국내 디벨로퍼 업계의 산증인이자, 레전드라고 불린다.
정 회장은 1984년 신영기업을 창업해 부동산 개발사업에 뛰어들어 올해 자산 5조원이 넘는 기업을 일궜다. 문 회장이 이끄는 엠디엠그룹은 올해 자산 규모가 7조원에 육박하고 재계 순위도 57위에 올라있다. 김 회장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와 대우건설에서 20여년간 주택사업을 담당한 뒤 2005년 개발업에 뛰어들었다.
이인영 한양건설 실장의 사회로 진행한 토크쇼에서 이들은 사업 성공 비하인드 스토리와 노하우, 디벨로퍼의 사회적 책임, 미래 전략 등을 주제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이날 토크쇼 주요 내용이다.
ㅡ디벨로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춘보 회장: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일본의 도심 재개발 현장에 자주 출장을 다녔습니다. 1980년 당시 일본은 고속 성장기였고, 개발업의 막 꿈틀거리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주택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일본을 보면서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발업이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문주현 회장 : “저는 직장 생활을 10여년 하면서 사실 사업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회사가 부도났고, 어찌보면 어쩔 수 없이 재직하면서 부동산 개발업을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서 개발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998년에 원룸 오피스텔을 얻어 직원 한 명과 창업해서 꿈을 가지고 열심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운명같기도 합니다. ‘해야되겠다’는 다짐도 중요하지만 환경과 분위기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고 희망을 갖고 계속 연구하면 기회는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김승배 회장 : “저도 문회장님처럼 직장생활 20년 하고 나와 개발업을 시작했습니다. 대형 건설사에 재직하면서 개발사업본부에만 13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당시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이 닥쳤습니다. 저는 주택개발사업을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회사를 나왔고, 1년 동안 오피스텔에서 어떤 아이템으로, 어떻게 회사를 운영할지 연구했습니다. 이후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 회사를 만들어서 현재까지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ㅡ가장 기억에 남는 위기의 순간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정춘보 회장 : “사업이 초기에는 순조로웠고, 대부분 잘되는 시기가 지속됐습니다. 2000년 중후반 충북 청주 대농 방직공장(50만여㎡)을 민간도시개발사업 1호로 허가받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성공과 성장만 거듭했기 때문에 한 번도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모두 흥분한 상태에서 과잉 투자를 하게 됐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맞게 됐습니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쓰나미가 덮친 셈입니다. 그때가 정말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원칙을 중시하면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문주현 회장 : “사업 초기 시드머니 만들 때가 참 힘들었습니다. 당시 마케팅을 특화해 하나의 산업군으로 만들어 나갔던 시기입니다. 높은 가격에 잘 팔아서 4만가구 정도를 공급했습니다. 당시 분양 수익만 1600억원 정도 벌었는데, 각종 영업비용을 제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초 분당신도시 파크뷰 주상복합 분양 당시 소송에 휘말리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적도 있습니다. 결국엔 무죄 판결받았지만, 억울하게 오해받았던 그때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개발사업의 어려움은 인허가 리스크가 크다는 점입니다. 정상적인 인허가는 문제가 안 되는데, 지방단체장이 규정에도 없는 분양가를 통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분양 승인을 별 이유 없이 몇 달씩 차일피일 늦춰버리고 가격을 마음대로 낮추는 게 정말 힘든 부분입니다."
▶김승배 회장 : "회사 설립 초기인 2006년 경기 평택시 용죽지구에 70만여㎡ 규모 도시개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초 만들어진 도시개발법 적용 초기였습니다. 당시 사업만 잘 하면 조(兆) 단위 자산을 쌓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고, 대출이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금융비용만 1500억원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한 사업지에서 이처럼 천문학적 금융비용을 물고 여기까지 와서 웃고 다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에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힘든 기간을 버티려고 개발회사가 PM(프로젝트 관리), CM(건설사업관리) 같은 용역까지 맡아가면서 힘겹게 버텨냈습니다. 그때 시작한 사업이 이제 마지막으로 학교용지를 주거지로 전환해 분양하고 입주하면 2026년쯤 될 겁니다. 한 개 프로젝트가 완성되기까지 20년 걸린 셈입니다. 이렇게 디벨로퍼는 인내심을 갖고, 오랫동안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ㅡ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성공 노하우가 있다면.
▶김승배 회장 : “디벨로퍼는 실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게 실패하지 않으면 기회는 늘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으려면 늘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제로 베이스, 현장 중심, 역발상' 이 세 가지입니다. 항상 새로운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해서 사업하면 공급이 넘치기 때문에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디벨로퍼 중에 역발상으로 사업하는 분이 많습니다. 저는 항상 생각을 거꾸로 해봅니다. 예컨대 1000가구 분양할 때 가장 늦게 팔릴 집이 어디냐,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겁니다."
▶문주현 회장 : "프로젝트마다 로케이션(입지)과 공급 시기가 다릅니다. 그때 그때 시장 상황에 맞는 상품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경 분석과 시장 분석을 철저히 하고, 남의 것을 카피해서 내놓는 것은 팔리긴 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지 않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좋은 상품에 아이디어를 녹여서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우리가 선도적으로 뛰어들어 디벨로퍼 업을 진화시키고 기업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게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긍정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항상 위기는 있고 불안한 시기도 옵니다. ‘할 수 있다’ ‘내가 아니면 누가하겠는가’라는 생각으로 계속 연구하고 고민하면 돌파구가 있습니다. 절대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한다는 자세가 성공 비결입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봄, 여름과 같은 시기를 만났지만 이제는 늦가을에 접어들어 겨울이 오는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유동성을 확보하고 통찰력과 안목을 키워 재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정춘보 회장 : "갑자기 옛날 생각이 떠오릅니다. 2000년대 초 요즘 ‘레지던스’로 불리는 생활형숙박시설(서머셋팰리스 서울)을 서울 광화문에 공급했습니다. 외국인 대상으로 한 장기체류시설이었는데, 완공하고 운영하는데 호텔협회에서 법률적인 토대와 허가 없이 운영하는 불법시설이라고 해서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에서 패소해 산업 자체가 날아갈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10년 간 관련 법령을 만들기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결국2012년 보건복지부에서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생활형 숙박업'(장기체류숙박업) 합법화하는 조항을 추가하게 됐습니다. 지방 도시나 관광지를 가면 생숙이 난립한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를 어렵게 설득해 제정한 법인만큼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려면 우리 모두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신영을 비롯한 디벨로퍼 업계가) 성실한 회사, 신뢰받는 회사,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라왔습니다. 아직 마지막 단계엔 이르지 못했지만, 존경받는 기업이 되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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