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재건축 단지 줄줄이 "신통기획 포기"…주택 공급 비상

뉴스 박기홍 기자
입력 2022.06.15 07:46 수정 2022.06.15 12:06

[땅집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이 역풍을 맞고 있다.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신통기획 참여를 줄줄이 철회하고 있는 것. 당초 정비사업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과도한 공공성 요구로 실익이 크지 않다고 보고 발을 빼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시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오 시장이 4선에 성공하면서 신통기획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신통기획마저 차질을 빚으면 서울 도심 주택 공급에 더욱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땅집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신속통합기획 등을 통해 도심 주택 공급을 빠르게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발빼는 재건축 단지들, 기존 방식으로 선회

신통기획은 그동안 꽉막힌 재건축 시장의 혈을 뚫어줄 마법의 카드로 보였다. 실제 지난해 1차 공모에만 24개 자치구에서 102개 단지가 대거 신청하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특히 강남구 압구정 현대·대치동 한보미도맨션 등 강남권 재건축 대어(大漁)도 7곳이 참여해 흥행을 이끌었다. 재건축 사업은 흔히 시간이 돈이라고 말하는데, 주민 제안부터 정비구역지정까지 5년 걸리는 기간을 2년으로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일선 재건축 조합원들 사이에서 신통기획 참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이들은 신통기획 참여로 공공임대 주택과 소형주택 비중이 늘어나는 것에 반발한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차 재건축 조합은 지난달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6%가 신통기획 참여에 반대해 민간 재건축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미 정비계획안 수립이 끝났고 주민 공람도 완료했기 때문이다. 임대주택 비중을 늘려야 하는 신통기획보다 기존 방식이 낫다고 본 것이다.

[땅집고] 서울 서초구 신반포4차 아파트. 최근 재건축 조합원 과반수가 신통기획 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네이버 로드뷰


인근 신반포2차 조합에서는 소형 주택 공급을 늘리라는 서울시 요구를 수용한 조합 집행부 대상으로 해임 추진 움직임이 나오기도 했다. 조합은 기존 1572가구 대비 17% 증가한 1840가구로 재건축할 계획이었지만, 서울시가 공급 확대를 요구하면서 가구 수를 30% 늘린 2051가구로 수정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임대주택과 일반분양 물량 일부인 479가구를 전용면적 51㎡로 돌려 가구 수를 더 확보하는 방안을 냈다. 기존 안에는 59㎡ 이하 물량이 없었다. 조합원들은 일반분양 물량을 소형으로 전환하면 재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고 반발한다.

강동구 명일동 고덕현대아파트도 신통기획 참여 철회를 검토하고 있다. 단지와 맞닿은 한양아파트와 통합해 공공 개입 없이 재건축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신통기획 1호 사업장이었던 송파구 오금현대아파트도 높은 임대아파트 비율(20.6%)에 조합원 반발이 거세지면서 신통기획 참여를 철회했다.

[땅집고]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재검토 단지 현황. /이지은 기자


■“서울시, 과도한 공공성 요구”…조합들 “아파트 가치 떨어질라”

신통기획에 대해 일선 재건축 조합과 서울시는 ‘동상이몽’(同床異夢) 상황이다. 조합은 수익성을 최우선시하고, 서울시는 공익 측면을 고려하다 보니 의견 충돌이 불가피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통기획 취지 자체가 정비사업 초기부터 제도적으로 절차를 빨리 지원하자는 건데 이미 정비계획안이 수립된 단지는 자체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다만 소형 평형 가구 수를 늘리거나 임대주택 비율이 너무 높아 사업이 무산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신통기획이라고 더 과도한 공공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조합은 서울시에 층수 규제 완화도 요구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연말에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고시가 난 뒤에야 적정성 검토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재건축 조합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도 신통기획 참여 철회가 늘어난 원인 중 하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0년 이상 단지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면제 같은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수익성 측면에서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굳이 신통기획을 선택할 이유가 없어진 것. 특히 가구당 대지지분이 많거나 분양가와 주변 시세가 높은 지역은 민간 재건축이 더 낫다. 서초구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들은 중대형 고급 단지로 재건축하는 걸 원하고 있다”면서 “신통기획에 참여해 아파트 가치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정책 변화가 없다면 신통기획 참여 철회 단지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로서는 신통기획이 민간 재건축보다 과도하게 개발이익을 환수하기 때문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부채납을 통해 개발 이익의 50% 가까이 환수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유지된다면 신통기획 참여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서울시는 조합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선에서 기부채납 조건을 제시하는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 박기람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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