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성동구 응봉동에서 성수동으로 이어지는 응봉교를 건너자 대형 공장이 나왔다. 공장 주변은 레미콘 차량이 드나들 때마다 뿌연 회색빛 가루가 흩날렸다. 서울에 단 3곳 밖에 없는 레미콘 공장 중 하나인 삼표산업 성수공장(2만8804㎡)이다. 1977년부터 운영한 이 공장은 오는 6월 말까지 이전하기로 돼 있지만 별다른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삼표산업 관계자는 “공장을 옮겨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봤지만 지금 이사할 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울 성동구 최대 숙원 사업중 하나인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이 5년째 겉돌고 있는 가운데 데드라인(기한)을 4개월여 앞두고 또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삼표산업은 “대체부지도 마련해 주지 않으면서 그냥 나가라고만 하면 어떡하느냐”며 버티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땅을 빌려준 현대제철은 “세입자가 못 나가겠다고 하는데 어떡하느냐”며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는 “안 나가면 강제로 철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실행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3400여억원이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공장 부지를 사들여 이용객과 경제성이 떨어지는 문화공원을 만들겠다고 한 것 자체가 혈세 낭비 우려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 기한을 4개월 앞둔 현재 서울시와 성동구, 토지주인 현대제철, 지상권자인 삼표산업이 여전히 보상과 대체부지 선정 등에 대해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표산업 관계자는 “유관 기관과 이전 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다.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 논의가 본격화했던 건 2017년 박 시장 재임 시절이다. 당시 박 시장이 공장 부지를 공원화해 서울숲을 완성하겠다면서 강력히 밀어붙였다. 2017년 7월에는 정원오 성동구청장, 강학서 현대제철 대표, 홍성원 삼표산업 대표 등과 협약식을 맺었다. 공장 이전 기한을 2022년 6월30일로 못박은 것도 이때다. 부지매입비 3414억원은 서울숲 동측 주차장 부지를 약 4400억원에 매각해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삼표산업은 이전을 4개월 가량 앞둔 현재 여전히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삼표산업 측은 옮기도 싶어도 갈 곳이 없다는 입장이다. 레미콘공장이 혐오시설로 인식돼 서울시내는 물론 수도권에서도 받아줄 곳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삼표산업은 가뜩이나 기업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시내에 공장이 있다는 이점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삼표산업은 최악의 경우 벌금을 감수하더라도 버티기에 들어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표산업은 서울에서 성수동 공장과 송파구 풍납공장을 운영 중인데, 풍납공장도 부지에서 풍납토성 성벽이 발견돼 공장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성수공장과 풍납공장은 삼표산업의 2020년 매출액 6535억원 중 3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두 공장을 동시에 이전하면 회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표산업은 서울에 단 3개뿐인 레미콘 공장 중 2개를 보유한 업체”라면서 “현재 서울에서는 재개발ㆍ재건축 붐이 일고 있는데, 공장에서 생산한 콘크리트는 공장에서 현장까지 운반거리가 최대 90분을 벗어나선 안 된다. 삼표산업 입장에서는 공장 조성과 이전에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차라리 벌금을 물고 매출을 올리며 버티는게 낫다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수용주체인 서울시와 토지주인 현대제철도 삼표산업만 쳐다볼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일각에서는 공장 이전 논의를 주도했던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동력이 사라진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도 임대료 수익이 끊기는 데다 막대한 보상까지 해야 하는 공장 이전이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삼표산업이 기한 내 공장 이전을 완료하지 않으면 도시계획사업 등을 통해 강제 집행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계획상 공원으로 예정돼 있어 다른 사용 방안에 대해서는 검토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34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굳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공원을 조성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당초에 지하철 서울숲역 바로 옆에 있는 가치 높은 공원 부지(서울숲 주차장 부지)를 팔아서 공장을 사서 새로 공원을 만든다는 구상 자체가 넌센스 아니냐”면서 “그 예산이면 더 가치있는 곳에 충분히 투자가 가능한데 지금이라도 기존 계획을 멈추고 논의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장귀용 땅집고 기자 jim33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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