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일산신도시가 전쟁시 서울을 지키기 위한 ‘총알받이’ 용도로 개발됐다고요? 정말 충격이네요.”
최근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부가 1990년대 초 1기신도시인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개발에 숨겨진 또 다른 목적을 다뤄 화제다. 사실 서울과 맞붙은 일산신도시는 북한 남침으로 전쟁이 날 경우 아파트는 진지로 활용하고, 놀이터에는 무기를 배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철저한 ‘군사도시’라는 것. 즉 일산신도시 전체가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한 바리케이트와 다름 없다는 것. 과연 이 방송 내용이 사실일까.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94년 7월 열린 임시국회에서 이병태 국방부 장관이 “수도권 외곽 신도시는 유사시 북한군 남침을 막는 바리케이드 장벽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국방부 장관 말을 듣고 분노한 일산 주민들은 “우리를 서울 총알받이로 쓴단 말이냐”고 항의하며 장관 해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공식 문서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 8월 24일 이진삼 육군참모총장과 이상희 토지개발공사(현 LH) 사장이 함께 작성한 ‘일산신도시 진지화 개념 설계 지침’ 합의각서다. 이 각서에는 북한군 침략을 대비해 일산신도시를 계획하고 아파트를 배열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신도시내 서북방 지역에 수로와 전투진지를 구축 ▲공원·공설운동장 등 유사시 부대·장비·물자 등 전개 공간을 확보 ▲시가지 내 남북 횡적 도로는 좁게, 동서 종적 도로는 넓게 개설 ▲시가전 상황을 고려해 주요 지점에 가각진지 등 전투 시설물과 대공화기 진지 구축 등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도로 계획이다. 일산신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는 좁게, 동서를 관통하는 도로는 넓게 만드는 것. 북한에서 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북한군 수는 최소화하고, 우리 군인은 가로로 최대한 많이 배치하기 위한 방어작전인 셈이다.
앞서 1970년대에도 일산신도시 개발 계획이 있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 1월 21일 남파 무장공작원 31명 청와대 습격 사건을 겪은 뒤 나온 계획이다. 무장공작원 중 한 명인 김신조는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다”고 발언해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 전 대통령은 ‘서울 요새화’를 위한 예비군 제도를 신설했다. 예비군 모집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을 우려해 일산신도시에 새 아파트를 대량으로 짓고 20~30대 부부에게 공급하는 계획을 세웠다. 젊은 남성을 예비군으로 더 빨리 부르기 위한 방침이었다.
다만 ‘국가가 서울을 지키기 위해 일산신도시 주민들을 총알받이로 쓴다, 일산신도시는 바리케이트용 지역일 뿐이다’는 말을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어차피 전쟁이 터질 경우 일산신도시뿐 아니라 서울 등 수도권 전체가 초토화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산신도시 진지화 설계는 국방 차원이며 당시 국방부 장관 말실수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견해가 많다.
방송을 본 시청자 중 1990년대를 일산신도시에서 보낸 이들은 “실제로 어렸을 때 전쟁이 터지면 일산신도시 아파트를 넘어뜨려서 북한군이 내려오는 걸 막는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학창시절 내내 ‘우리는 총알받이, 고기방패’라는 말도 있었다”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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