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대전 동구 용운동 ‘e편한세상 대전 에코포레’ 아파트는 ‘용운 주공’ 아파트를 재건축해 2년 전 준공했다. 2004년 재건축 추진위원회 설립 이후 자금 조달 문제 등으로 10년 이상 사업이 지지부진했지만, A신탁사를 재건축 사업대행자로 선정하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2016년말 사업대행자 지정 이후 1년 만에 사업시행계획변경인가, 관리처분변경인가, 이주·철거를 마무리짓고 2017년 12월 일반 분양 절차를 밟았다. 신순이 용운주공 재건축 조합장은 “한동안 멈춰섰던 사업이 신탁방식 정비사업으로 방향을 튼 뒤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고 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신탁 방식 정비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조합 내부 복잡한 이해관계로 오랫동안 사업이 묶인 조합들이 신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나타나면서다. 신탁업계에서는 현재 시작 단계인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성과가 점차 널리 알려지면서 이 방식을 선택하는 조합들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일반적인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기존 토지·주택 등 소유자들이 법인 격인 조합을 설립해 사업을 추진한다. 하지만 조합은 전문성이 부족한 데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하나로 모으기 어려워 불법과 비리 등 문제가 불거지면 최악의 경우 사업이 기약없이 중단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다른 모든 부동산 사업과 마찬가지로, 재건축·재개발도 ‘시간’이 수익률의 핵심 요소다. 아무리 입지가 좋은 지역에 낮은 가격에 매물을 샀더라도 사업이 지지부진하면 투자에 실패하기 마련이고, 기존 주민들도 기대하던 수익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이러한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2016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제27조)’을 통해 도입됐다. 전문성을 갖춘 부동산 신탁사가 조합을 대신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추진한다.
통상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추진하면 일반적인 조합방식에 비해 사업 완성까지 기간이 짧게는 1~2년 정도 줄어든다. 하지만, 실제 사업추진 속도를 보면 신탁방식이 아니었으면 추진이 불가능했을 사업이 속도를 내는 경우도 있다. 신탁방식은 조합이 설립되지 않아 조합운영비가 절감되고, 사업 기간이 줄어들어 각종 사업 부대비용과 금융비용, 공사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KB부동산신탁 관계자는 “금융기관인 신탁사가 초기 사업비를 조달해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 가능한데다, 조합방식에 비해 투명한 자금 및 사업관리력이 신탁방식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조합 방식에서 자금 조달의 어려움도 신탁 방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예컨대 기존 아파트 규모가 600가구에 이르는 단지라면, 1억원에 가까운 안전진단 의뢰 비용이 발생한다. 1억원이라는 안전진단 비용을 600가구가 나누어 균등 부담하면 가구당 17만원 정도를 납부해야한다.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실제 소유자로부터 이 돈을 받아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신탁방식을 택하게되면 신탁사가 신탁계정대여금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사업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신탁 방식 정비사업은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 ‘신속통합기획1호’인 관악구 신림1구역 재개발을 비롯해 ▲서울 북가좌6구역 재건축 사업, ▲신림 미성아파트 재건축, ▲노원구 상계주공 5단지 재건축, ▲양천 신정수정 재건축, ▲봉천1-1구역 재건축 등 약 1만여 가구 규모의 사업장이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택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들 구역은 시공사를 선정하거나 선정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땅집고가 주요 신탁사를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10개 신탁사의 수주액 규모 변화는 ▲2018년 1087억원 ▲2019년 1200억원 ▲2020년 1800억원 ▲2021년 5720억원(11월말 기준)으로 나타났다. 한 대형 신탁사 관계자는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지난 5년간 연평균 약 15% 성장세를 나타냈고, 특히 올해는 전년 대비 3배 이상으로 성장했다”며 “2022~2023년에도 올해 이상의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 신탁방식 장점 많지만… ‘인식 개선’ 등은 남은 과제
하지만 신탁방식에 대한 불신도 있다. 실제 정비사업 현장에선 신탁방식에 대한 신뢰도와 인지도 부족으로 인한 불신이 여전히 크다. 실제로 첫 강남권 신탁 재건축 단지로 기대를 모았던 잠원동 신반포4차 아파트도 주민들의 반발로 신탁방식이 무산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탁사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여전히 신탁등기에 대한 거부감과 신탁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신탁사 지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큰 것이 아쉽다”고 했다.
조합을 비롯한 조합원 입장에서는 분양 매출의 3% 안팎을 신탁사에 수수료로 납부해야 하는 것도 반대요인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수수료를 내더라도 사업에 속도를 내는 것이 조합원 각자에게는 유리하지만, 실제 현장에 가면 ‘뭔지는 몰라도 일단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 이해관계가 복잡하지 않고 사업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곳에서는 신탁방식 보다는 조합 방식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신탁사 참여유무보다 조합원들의 합의된 의견 수렴 여부 등이 결국 사업에 관건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선철 무궁화신탁 도시재생부문 부대표(부사장)은 “신탁사는 정비사업의 사업시행자 또는 사업대행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사업에 있어 다양한 장점이 있지만, 매 사업단계별로 조합원들의 의사 결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각 절차마다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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