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국제금융허브가 들어설 여의도에 서민용 임대주택을 짓겠다니 말이 됩니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1-2일대 나대지 8264㎡.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유한 이 땅은 63빌딩 바로 옆으로 여의도 국제금융중심지 한복판이다. 지역 부동산 업계에선 시세 기준 땅값만 최소 3000억원에 달한다고 본다. 하지만 지난해 8·4대책 발표 이후 정부가 이 땅에 전용 7평(80가구)과 13평(220가구)으로 구성된 300가구 소형 임대아파트를 짓겠다는 기본 계획안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여의도 주민들은 “국제금융중심지로 지정된 땅에 집이 부족하다고 무작정 임대주택을 짓는 것은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LH 소유 부지는 1978년 학교 용지로 지정됐지만 여의도에 더 이상 학교 건설이 필요하지 않다는 서울시교육청 판단에 따라 40년 넘게 방치돼 있었다. 이후 서울시가 여의도를 국제금융중심지로 키우겠다는 발표하면서 여의도에서는 해당 부지 개발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당초 계획과 달리 정부가 해당 부지에 임대주택 계획을 발표하면서 여의도 주민들은 ‘여의도주민협의회’(여주협)을 구성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여주협은 “주민 협의도 없이 소형 임대주택을 짓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특히 이 부지는 서울시의 여의도 금융중심지구단위계획 국제금융중심지130만㎡에 포함돼 있어 국제금융중심지 계획에 심각하게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은 국토부와 LH가 주민 열람이나 주민설명회 등 아무런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사업을 졸속으로 진행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주협은 지난 7월 주민 8000여 명 서명을 받아 구청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주민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영등포구청은 지난 7~8월 LH와 국토부 등에 성명서를 전달하고, 주민설명회 개최를 요청했다.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서울 영등포구을)과 채현일 영등포구청장, 정재웅 서울시의원(여의도·신길)도 지난 9월 말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부지에 글로벌 백신·면역 대학, 전문병원, 바이오 오피스가 결합한 ‘K바이오 원스톱센터’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공공임대주택 건설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공기업인 LH 보유 부지인데다 재개발이 아닌 개별 건축 사업이어서 법적으로 주민공람 의무도 없다는 것이다. 해당 부지에 들어설 임대주택은 일반 행복주택이 아닌 일자리 연계형 주택으로, 여의도 일대 금융 종사자를 우선적으로 입주시킬 예정이어서 직주근접성도 높이고 여의도 금융특구 취지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주택 비율을 최소 기준인 51%로 잡는 등 관련 지자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연내 사업시행자를 찾기 위해 민간공모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 사업은 공람 대상이 아닌 만큼 주민설명회도 개최할 계획이 없다.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 확대가 필요하지만 당장 급하다고 땅만 있으면 무조건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근시안적인 행정이라고 평가한다. 문재인 정부와 숨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지속적으로 주택 공급을 방해하고,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일종의 범죄행위처럼 취급하는 행정을 펼쳐왔다. 그러자 집값이 폭등하고, 여론이 악화되자 서울의 빈땅만 찾으면 아파트를 짓겠다고 달려드는 상황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울은 빈 땅이 귀한데 금융중심지인 여의도에는 서울의 도시 기능을 살릴 수 있는 시설을 짓는 것이 도시계획에 적합하다”며 “임대주택이 필요하다고 도시 기능까지 무시한 채 땅만 보이면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것은 구태의연한 발상”이라고 했다.
사업 추진 방식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공람 대상은 아니어도 주민들과 기초적인 소통에는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인 땅도 국가가 정한 용도지역별로 건물을 짓는 것처럼 국가 땅에 주택을 지을 때는 적어도 주민 의견 한번쯤은 들어야 한다”며 “주민의견 수렴 없는 일방통행식 행정처리는 결국 정부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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