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집주인입니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해서 집을 팔았습니다. 매수인에게 집을 넘겨줘야 하는데, 세입자가 갑자기 갱신요구권을 행사하겠다며 말을 바꿔 정말 황당합니다. 계약에 차질이 생겨 어찌할 줄 모르겠습니다. 이 세입자를 내보낼 방법은 없을까요.”
지난해 이른바 임대차 3법 시행 후 계약갱신요구권을 둘러싸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당초 갱신요구권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가 입장을 바꾸는 세입자들도 적지 않아 주택 매각계획이 꼬여버린 집주인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은 추후 세입자가 입장을 번복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선 ‘제소 전 화해(提訴前和解)’ 조서로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제소 전 화해란 민사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제소(소송)를 하기 전 화해한다는 뜻으로, 서로 약속을 잘 지키겠다는 조서를 작성해 법원 판사 앞에서 확인받는 제도다. 분쟁 상황이 발생하기 전 미리 당사자끼리 합의해 놓는 셈이다. 그 자체로 확정 판결문과 같은 효력을 내기 때문에 제소 전 화해에서 정한 약속을 위반하면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집주인들은 ‘임대차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주택을 비워준다’는 취지를 담은 제소 전 화해 신청서를 작성해 법원에 접수하면 된다. 다만 신청서 작성 전 세입자와 원만한 합의가 선결 조건이다. 조서에 임대차계약서, 인감증명서 등을 첨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집주인이라도 세입자 동의 없이는 임대차 3법을 무시하고 집을 비워달라는 내용으로 제소 전 화해 신청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당사자들이 법원에 제소 전 화해 신청서를 제출하면 ▲신청서 송달 ▲심리기일 지정·통지 ▲재판 ▲화해성립 ▲화해조서 송달 순으로 이뤄진다. 이 때 강행법규에 위반하는 내용으로 제소 전 화해할 경우 법관이 해당 조항을 제외·변경해 모든 당사자들이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한다.
제소 전 화해 조서가 성립되었음에도 임차인이 ‘집을 못 비워주겠다’고 말을 바꾼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제소 전 화해 조서는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고 있으므로, 집주인은 조서를 기반으로 강제 집행할 수 있다”며 “한 번 제소 전 화해가 성립되면 조서 내용과 반대되는 내용으로 세입자가 함부로 입장을 바꿀 수 없다는 얘기”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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