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이런 신종 갑질이…" 임대주택 당첨 가르는 기막힌 기준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1.10.08 07:16

[땅집고] 지난 9월 17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동작구가 공급한 '청년 맞춤형 공공주택' 입주자모집공고. 입주자 선정방법에 '자기소개서 심사' 항목이 있어 청년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동작구청


[땅집고] “이제 청년들이 임대주택 들어가려면 자기소개서까지 내야 하나요? 얼마나 사정이 절박한지 한번 써보라는 건지….”

지난 9월 17일 입주자모집공고를 낸 서울 동작구 ‘청년 맞춤형 공공주택’.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동작구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으로, 동작구 상도동에 1개 단지(14가구) 사당동에 2개 단지(35가구)를 각각 공급했다. 상도동 ‘스튜디오 상도14’의 경우 전용 22㎡ 주택 임대료가 보증금 1420만~2367만원에 월세 15만~25만원 정도로 시세 대비 저렴해 청년층 관심을 끌었다. 이달 1일 입주자 신청을 마감했다.

그런데 이들 단지가 신청 과정에서 ‘자기소개서’를 따로 작성하도록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젊은층의 분노를 사고 있다. 통상 임대주택 입주자를 선정할 때 주택소유여부나 소득·자산기준 정도만 따지는데, 이번 동작구 청년주택이 입주희망자들에게 자기소개서까지 내게 한 것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취업하느라 자소서 쓰기도 힘든데, 임대주택 들어가려고 자소서를 또 써야 한다니 ‘갑질’도 특이하게 한다”, “자소서로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만큼 입주내정자가 있는지도 의심된다”는 등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땅집고] 동작구 청년 맞춤형 공공주택 자기소개서 항목은 총 4가지로 구성한다. /동작구청


입주자모집공고에 따르면 동작구 청년주택 3곳은 우선공급(3가구)과 일반공급(46가구)으로 입주자를 받는데, 각 전형별로 두 차례 심사를 거친다. 먼저 1차에서는 배점항목표에 따른 점수를 매긴다. ▲ 동작구 연속 거주기간(3~15점) ▲지하·반지하·옥탑방·고시원 거주 여부(5~10점) ▲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 여부(1~10점) 등 항목이 포함됐다. 이어 2차에서는 소득자산과 ‘자기소개서’를 심사한다. 총 100점 만점으로 1차 평가비중이 60%고 2차가 40%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지원자들이 자기소개서 작성을 무시할 수 없는 셈이다.

문제의 자기소개서 항목은 총 4개다. ①간단한 자기소개 ②지금 살고있는 집의 장단점과 동작구 청년주택을 신청한 동기 ③청년맞춤형 주택입주자를 위해 어떤 프로그램 또는 교육이 필요할지 제안 ④공동주택 입주자로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입주자간 생활매너 및 규칙 작성이다. 최대 5~6줄 내로 작성하라고 명시돼있다. 기업 자소서만큼 많은 분량을 채워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청 동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많다. 한 네티즌은 “자기들이 (청년주택 운영 방식을) 생각해내기 귀찮아서 자소서를 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땅집고] 올해 자기소개서 제출을 요구한 서울 청년전용 임대주택 단지들 목록. /이지은 기자


땅집고 취재 결과 그동안 자기소개서 작성을 요구하는 청년 전용 임대주택 사례는 그동안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여럿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만 해도 7월 중랑구 면목동에 공급한 민관협력형 토지임대부 공동체주택 ‘도서당’ 38가구, 5월 금천구의 수요자맞춤형 매입임대주택 ‘G밸리하우스’ 6가구, 1월 동작구 상도1동의 청년 맞춤형 공공주택 19가구 등이다. 자기소개서 항목도 ▲본인 소개 ▲입주신청 계기 및 필요성 ▲공동체생활에 대한 생각 등 대체로 비슷했다.

‘자소서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동작구청은 “자기소개서는 사실상 적합·부적합 수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당락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 점수의 60%를 차지하는 1차 정량평가에 따라 입주자 선정 여부가 갈리기도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이번에 공급한 청년맞춤형 공공주택의 경우 일반 임대주택과는 달리 입주자들이 직접 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치규약을 만들어 건물을 관리해야 하고, 다 함께 쓰는 커뮤니티 시설을 포함하기 때문에 지원자가 공동체생활에 얼마나 적합한지 파악하기 위해 자기소개서 항목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또 지원자가 청년주택에 꼭 입주해야 하는 사연이 있는지 여부도 알 수 있다.

이 같은 동작구청 해명에 “모르는 사람과 한 공간을 쓰는데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 지자체에서 한 번 걸러준다니 나쁘지 않아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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