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길을 걷다 보면 출입구 쪽 벽면에 한자로 ‘정초(定礎)’, 혹은 한글로 ‘머릿돌’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붙어 있는 빌딩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이를 정초석이나 머릿돌이라고 하는데, 건물이 공사에 착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석판이나 금속판에 건물명과 함께 기공 날짜를 새겨두는 식이다.
그런데 건축업계에선 이 머릿돌이 단순한 장식용 표지판은 아니라고 말한다. 머릿돌을 떼내어보면 해당 건물의 역사를 담고 있는 ‘타입캡슐’이 나온다는 것이다. 작은 금속함에 건물 설계도면을 비롯해,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신문이나 관련 소품 등이 보관돼있는 경우가 많다.
머릿돌을 떼어내는 광경은 건물을 철거할 때 밖에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역사가 깊은 건물을 철거할 때 발견된 머릿돌 타임캡슐은 언론에 소개되기도 한다. 1972년 8월 서울 종로구에 준공한 옛 새문안교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새문안교회는 2014년 새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하면서 약 42년만에 건물 머릿돌 안에 들어있던 타임캡슐을 열게 됐다. 가로 37㎝, 세로 24.5㎝, 높이 12㎝자리 은색 금속 상자인데, ‘1원’이나 ‘5원’ 등 지금은 통용되지 않는 빳빳한 지폐들이 쏟아져나왔다. 또 사인펜으로 쓴 당시 교인 명단과 건축 헌금자 명단, 1972년 5월 10일 초판 인쇄된 ‘관주 성경전서’, 서예가 김기승이 제목을 쓰고 운보 김기창이 표지화를 그린 ‘새문안교회 70년사’ 등 10여종의 문서가 담겨있었다.
건물에 이런 타임캡슐을 묻게 된 계기가 뭘까. 옛부터 궁궐, 관공서, 사찰, 한옥 등을 건축할 때 기념행사를 수차례 했는데, 이 중 정초식(定礎式)과 상량식(上樑式)이 혼합된 행위라는 분석이 있다. 정초식이란 건축 공사에 착수한 연월일을 기록한 머릿돌을 설치하면서 건물과 관련한 각종 문서들을 보관하는 행사며, 상량식은 목조건물 골조가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최상부에 설치하는 마룻대(상량)를 올린 뒤 이 곳에 공사와 관련한 기록 및 축원문을 적은 문서(상량문)를 봉인하는 의식을 말한다. 그런데 현대 건축에서 목조건물 비율이 낮아지면서 상량식을 진행하는 사업장도 따라서 줄자, 당초 천장 마룻대에 넣었던 문서들까지 머릿돌 뒤에 대신 보관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모든 건축물이 머릿돌 안에 타임캡슐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땅집고 건축주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양길 제이아키브 대표는 “머릿돌에 각종 문서를 보관하는 것은 순전히 건축주의 의지다. 즉 현행 건축법 등이 강제하고 있는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라며 “통상 건물 규모가 제법 커 역사를 기록할 만한 경우나, 학교 혹은 종교 건물 등이 타임캡슐을 봉인하는 때가 많다”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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