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3000가구 다 부술 판"…검단 아파트 사상 초유 사태 빚나

뉴스 김리영 기자
입력 2021.09.13 05:03

[땅집고]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 짓고 있는 아파트 3개 단지, 3000여가구가 문화재법상 왕릉(王陵) 경관을 가린다는 이유로 공사 중단 조치를 당했다. 최악의 경우 이미 꼭대기층까지 올라간 아파트를 전면 철거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땅집고] 문화재청으로부터 공사 중지 명령을 받은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골조 공사가 모두 끝났다. /네이버지도


문화재청은 지난 6일 사적202호인 김포 장릉 근처에 아파트를 지은 대방건설·대광건영·금성백조 등 3개 건설사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문화재청은 건설사들이 문화재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반경 500m 내에 최고 25층·3400여 가구 규모 아파트를 지으면서 사전 심의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허가 절차를 어기고 왕릉 근처에 건축물을 지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청 허가를 받지 않고 건물을 짓는 경우 공사 중지 또는 원상복구 명령이 가능하다. 문제는 3개 건설사 모두 이미 아파트 꼭대기층(20~25층)까지 골조 공사를 끝내고 내부 마감 작업 중이라는 것. 입주는 내년 6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이미 지난 7월21일 한 차례 공사가 중지됐다가 다시 재개된 상태지만 앞으로 책임 공방에 따라 입주가 무기한 연기되거나, 최악의 경우 건물을 부숴야 할 수도 있다. 수분양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문화재청 “왕릉 조망 해쳐”…철거 없이 설계 변경 불가능

김포 장릉은 조선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1580~1619년)과 부인 인헌왕후(1578~1626년)의 무덤으로 사적 202호다. 문화재청장은 역사보존지역 반경 500m 안에 짓는 높이 20m 이상(아파트 7층) 건축물은 개별 심의한다.

[땅집고]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공사 중지 명령을 받은 검단신도시 3개 아파트. /김리영 기자


허가받지 않은 아파트는 ▲대방건설의 ‘디에트르 에듀포레힐’(20층·1417가구) ▲대광건영의 ‘대광로제비앙’(20층·735가구) ▲금성백조의 ‘예미지트리플에듀’(25층·1249가구)다. 각각 내년 6~9월에 입주할 예정이다. 모두 꼭대기층(20~25층)까지 골조가 건설된 상태다. 총 44개 동 가운데 보존지역에 포함된 동은 19개 동으로 ▲대방건설이 총 21개동 중 7개동 ▲대광건영이 9개동 전체 ▲금성백조는 14개동 중 3개동이다.

문화재청은 이 단지들이 ‘왕릉의 조망을 해친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아파트 건물이 높기도 하지만 동 위치도 왕릉 조망을 가리고 있다는 것. 앞서 장릉 쪽으로 200m 더 가까운 곳에 지은 ‘장릉삼성쉐르빌’ 아파트는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2002년 준공했다. 이 아파트는 15층 높이로, 최대한 왕릉을 가리지 않도록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도록 지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문제가 된 3개 단지는 이미 건설된 동을 철거하지 않고서는 조망을 가리지 않도록 설계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보인다.

■ “다 지은 아파트 부수라니” vs. “선례 남기지 말아야”

건설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아파트 용지를 매각한 인천도시공사가 택지개발에 대한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했고 당시 허가가 났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인허가기관인 인천 서구청의 경관 심의도 받았다. 건설사들은 “공공택지에 지은 아파트인 만큼 허가를 내준 인천시뿐 아니라 사전에 조치를 취하지 않은 문화재청의 관리 소홀 책임도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화재청 관계자는 “2014년에 땅 매각사인 인천도시공사가 신청한 현상변경허가 신청서는 서류 상으론 택지개발에 대한 내용 뿐이었고, 아파트 건설에 필수적인 설계도, 입면도, 배치도, 건설사 이름 등에 대한 사항은 제출하지 않았다”며 “아파트 사업계획승인이 2019년에 이뤄졌는데, 이 때 토지를 매각한 인천도시공사나 인천 서구청, 건설사가 한 번 더 검토했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문화재보호법 제35조에 따라 왕릉 인근에 건축물을 지을 때는 행위자(건설사)가 직접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도 있어 건설사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땅집고]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를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 /인천도시공사


해당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계획 승인 당시 경관심의까지 거쳤는데, 갑자기 이런 처분을 받아 정말 답답한 심정”이라며 “문화재청 심의 기준을 최대한 준수하려고 재심사 준비를 하고 있지만, 되돌릴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수분양자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원만하게 심사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문화재보호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철거까지 가능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건설사뿐 아니라 아파트 입주예정자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문화재청과 건설사, 인천시 간에 법적 책임 공방도 불가피하다. 문화재청 역시 재심사를 앞두고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미 공사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수분양자 피해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며 “하지만 문화재청이 절차적인 부분에 대해 명백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또다시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수분양자 피해는 최소화하면서도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는 방향으로 협의점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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