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과 홍대입구역 사이 마포구 서교동 일대. 대로변에는 식당·카페·쇼핑몰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과 젊은이가 주로 찾는 주점과 클럽이 줄지어 서있다. 하지만 뒷골목에는 변변한 꼬마빌딩조차 찾기 힘들다.
이 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 바로 작년 1월 준공한 ‘skylan(스카이랜)’이다. 거대한 유리상자를 곡선 콘크리트 벽이 감싸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멀리서도 시선을 끈다. 현재는 모던 가구 브랜드 A회사가 건물을 통째 쓰고 있다.
건축주는 50대 초반 미국 교포. 당초 서교동 상권 특성을 고려해 음악카페와 식당, 사무실 등을 들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을 짓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가구 회사가 “사옥으로 통임대하고 싶다”며 먼저 연락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현상일 구도건축 소장은 “낡은 주택과 허름한 꼬마빌딩이 가득한 곳에 눈에 띄는 건물을 세우니 기꺼이 사옥으로 쓰겠다는 업체가 나타난 것”이라며 “이 회사도 원래 서교동 낡은 빌딩에 입주해 있다가 랜드마크 빌딩이 생기자마자 입주했다”고 했다. 현 소장은 오는 11월 초 개강하는 제20기 조선일보 땅집고 건축주대학에서 강의한다.
◇건축주가 교포…사실상 원격 건축으로 진행
‘스카이랜’은 지하 1층, 지상 5층 총 6개층이다. 현 소장은 “상업건물인 만큼 모든 층의 가시성과 접근성, 임차인의 이용 편의성을 동시에 높이는데 집중했다”고 했다. 현재는 층마다 1개 점포가 들어서도록 설계돼 있지만 최근 불경기인 점을 고려해 가벽이나 칸막이를 달면 층당 2개까지 쪼개서 세를 놓을 수도 있다.
건축 과정도 독특했다. 건축주가 미국 교포여서 중요한 의사 결정은 영상 통화와 SNS(소셜미디어) 채팅으로 이뤄졌다. 건물이 올라가는 1년여 동안 건축주가 현장을 찾은 횟수는 딱 한 번이다. 현 소장이 건축주에게 일주일에 3~4회 카카오톡을 통해 진행 사항을 공유했다. 사실상 원격 건축이었던 셈이다. 건물이 통임대되면서 건축주가 건물을 번거롭게 찾을 일은 더욱 줄었다.
현 소장은 스카이랜이 멀리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우선 건물을 이면도로와 최대한 붙여서 지었다. 외벽은 도로와 평행한 상자모양으로 짓는 대신 곡선 처리해 건물이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유리 실린더를 얇은 콘크리트판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밤에는 통유리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와 마치 ‘대형 캔들 워머’같다.
건물 전면에 주차장이 있으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감안해 1층 매장 전용 출입구에 캐노피(canopy·지붕이나 처마처럼 생긴 덮개)를 만들어 건물 정체성을 나타내는 조형물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
◇모든 층 돋보이도록 세입자 배려…주차대수도 극대화
상업용 건물에서 1층은 흔히 얼굴로 꼽힌다. 1층에 대한 인상이 건물 전체 이미지로 굳어지는 만큼 섬세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 건물은 전면 도로에서 1층으로 곧장 들어올 수 있는 별도 출입구를 만들었다. 도로와 접한 매장 벽면 2곳은 폴딩 도어와 통유리로 마감해 개방감을 극대화했다. 건물 대지 북쪽이 남쪽보다 1m 가량 높은 점을 감안해 매장 출입로 경사를 없애는 데크도 설치했다.
2~5층도 1층 못지 않게 접근성이 좋다. 윗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출입문을 따로 뒀다. 출입문은 통유리로 마감하고 밝은 조명을 달았다. 세입자를 위해 층마다 발코니도 만들었다. 탕비실·창고·수납 등 다용도로 활용 가능하다.
당초 음악카페를 들일 예정이던 지하 1층에는 1층과 이어지는 별도 계단을 만들었다. 다중이용시설은 주출입구 외에 피난구를 1개 이상 갖춰야 영업허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급·배기시설도 1개씩 설치했다.
법정 주차대수는 6대인데 자투리 부지까지 합해 8대를 확보했다. 현 소장은 “당초 층마다 개별 임대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는데, 건축 도중 통임대하게 됐다”며 “세입자가 트렌디한 가구 회사여서 건물의 정체성이 더 잘 드러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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