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국제도시라더니 아파트만 빽빽…LH·건설사만 돈잔치

뉴스 인천·평택=장귀용 기자
입력 2021.09.06 07:14 수정 2021.09.06 07:31

[땅집고] 인천 청라국제도시 6단지 A3·4블록에2019년 3월 각각 480가구 규모로 들어선 ‘호반베르디움 6차’, ‘청라시티프라디움’ 아파트. 호반건설과 시티건설이 ‘외국인 전용 10년 임대 아파트’로 지었다. 하지만 준공 2년이 넘도록 입주자는 한 명도 없다. ‘1년 넘게 입주자가 없으면 일반분양할 수 있다’는 경제자유구역특별법 규정에 따라 두 단지는 연내 일반 분양할 예정이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지만 주변 시세와 최근 뜨거운 분양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두 건설사는 각각 1200억, 1900억원 정도 매각 대금을 예정보다 8년 앞당겨 회수할 수 있을 전망이다. 2017년 당시 두 회사는 각각 199억5900만원, 247억7300만원을 주고 땅을 샀다. 향후 8년간 빈 임대아파트로 방치했을 경우와 비교하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땅집고] 인천 서구 청라동에 입주한 시티프라디움. /전현희 기자


청라국제도시는 당초 이름에 걸맞게 국제업무단지와 국제금융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재 국제업무단지(27만8000㎡)와 국제금융단지(15만9000㎡) 부지에는 고층 빌딩은 하나도 없다. 대신 잡초만 무성하다. 개발 시작 6년이 지났지만 외국 기업은 단 한 곳도 들어오지 않았다.

인천 청라·경기 평택 등지에 조성 중인 이른바 ‘국제도시’들이 외국계 기업과 공장 유치에 실패하면서 외국인 유치용 부지를 내국인 대상 아파트 용지로 속속 바꾸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외국인 임대아파트 부지를 매입해 손실이 컸던 건설사는 일반 분양 아파트로 전환하면서 도리어 수백억원대 이득을 남길 전망이다. 사업시행자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당초 업무지구로 계획한 땅을 비싼 주상복합 용지 등으로 팔 수 있게 됐다. 국제도시가 외자 유치라는 본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채 건설사와 LH의 아파트·땅 장사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외국인·외국기업 없는 ‘무늬만 국제도시’


[땅집고] 인천 청라국제도시는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로 한 업무용지를 주상복합,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등을 지을 수 있도록 용도를 변경했다. /전현희 기자


인천 청라 국제업무단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외국기업 임직원이 거주하게 할 목적으로 지은 외국인전용 임대아파트를 지은 호반건설과 시티건설은 요즘 표정 관리 중이다. 임차인이 한 명도 없어 경제자유구역특별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 아파트를 일반 분양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금 회수가 어려운 임대 아파트 부지여서 애초부터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아파트를 일반 분양으로 바꿔주는 것은 해당 기업 입장에서는 로또 맞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부러워했다.

인천 송도국제신도시 ‘더샵그린워크3차’(67가구)도 마찬가지다. 당초 2015년 외국인 전용 임대주택으로 지었지만 5년 후인 2020년까지 임차인이 없어 일반분양으로 전환했고, 평균 100.9 대 1의 청약 경쟁률로 단기간에 ‘완판’했다. 당시 계획했던 임대료는 67가구를 통틀어 월 6700만~804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일반분양으로 전환하면서 건설사는 예정보다 일찍 200억원이 넘는 매각 대금을 회수해 이익을 보게 됐다.

[땅집고] LH는 고덕국제도시 내 국제교류단지를 주거용지로 변경하는 계획을 수립 중이다. /전현희 기자


국제도시 사업을 맡은 LH도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다. 국제업무지구 조성 부지를 주거용으로 바꿔 팔면 땅값을 몇배씩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라국제도시 국제업무단지는 지난해 설계변경을 통해 주상복합과 오피스텔을 지을 수 있게 됐다. M5·M6블록(7만1000㎡)은 주상복합 용지로 변경했다. B1·B10블록(7만㎡)에는 오피스텔, B2·B9블록(13만㎡)에는 지식산업센터를 각각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11월 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가격 협상 중인데 전체 부지를 합쳐 약 122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3년 넘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1200억원대 땅이 용도를 변경하자마자 한번에 팔려나가는 셈이다.

경기 평택에 있는 고덕국제신도시도 마찬가지다. 고덕신도시 동쪽 3단계에 있는 107만4000㎡ 규모 국제교류단지는 업무시설 유치 실적이 전무하다. LH는 이 부지를 아파트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고덕국제도시(1342만2000㎡)의 8%에 달하는 면적이다. 역시 용도 변경을 통해 최소 수백억원대 이익을 볼 것으로 보인다.

■ 도심서 멀어 경쟁력 낮아…예견된 실패

국제도시는 정부가 지정한 경제자유구역에 조성하는 신도시다. 주로 항만과 가까운 곳에 개발돼 물류와 원자재 수입에 유리하다는 점을 내세운다. 국내 기업도 이런 점을 고려해 공장을 세우거나 지점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국제도시 실패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름만 국제도시일뿐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한 마케팅 활동은 없었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송도·청라·영종)은 외국인투자기업에 조세감면 혜택(법인세 3년간 100% 면제, 취·등록세 15년간 100% 면제, 재산세 10년간 100% 면제)을 준다. 하지만 이 정도 혜택으로 장기 투자하는 외국 기업은 없었다.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내부 검토 결과, 해외 경쟁 도시와 비교해 세제 혜택이 그렇게 크지 않고 기간도 너무 짧다”며 “이전·신설 비용까지 감안하면 인적·물적 교류가 부족한 신도시에 입주하는 것은 리스크가 큰 모험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제도시 위치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항만이나 공항과 가깝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기존 도심에서 멀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장점이 될 수 없었다. 인적 자원 수급에도 적합하지 않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외국 금융기관이 인적 자원이 몰린 서울 대신 인천에 들어올 가능성이 낮다”며 “제조업체도 국내에서는 이미 부산에 해외로 운송하는 활로가 잘 마련돼 있어 인천 일대 국제도시에 기업이 들어올 유인이 없다”고 했다.

국제도시 실패로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번 건설사가 진짜 승자라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이은형 연구원은 “외국자본 유치와 일반분양 전환이 비단 인천이나 평택 국제도시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결국 국제도시는 실패하고 집값이 오르는 것이 불 보듯이 뻔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일반분양을 염두에 두고 부지를 낙찰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장귀용 땅집고 기자 jim332@chosun.com,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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