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지금 주민들이 이용할 만한 편의 시설도 없는데 그 자리에 집을 또 짓겠다니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가 2기 신도시 4곳의 ‘유보지’ 일부에 주택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유보지 주변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유보지는 신도시의 자족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부지로 마트, 병원, 영화관 등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상업시설과 편의시설을 짓는 용도로 사용한다. 하지만 “집이 부족하지 않다”던 민주당이 난데없이 “집이 부족하다”고 입장을 바꾼 뒤 2기 신도시 유보지에 집을 짓도록 하는 정책추진하고 있다. 특히 2기 신도시 주민들은 서울 접근성이 더 좋은 3기 신도시 조성에 이어 잇따라 정부 주택 정책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는 지난 6월 ‘서민·무주택자의 내집마련을 위한 수도권 주택 공급방안’을 발표하면서 2기 신도시 유보지에 58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양주 회천신도시 1000가구 ▲파주 운정신도시 3지구 1700가구 ▲평택 고덕국제신도시 1750가구 ▲화성 동탄2신도시 1350가구 총 4개 지구이다. 이곳에 LH가 직접 개발하고 2022년 사전청약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현행 제도상 유보지는 해당 지자체·입주민이 협의한 후 주거용이 아닌 자족시설용지로 활용한다. 대표적인 지역이 경기 평택시 고덕신도시 해창리 일대다. 경기도는 당초 이곳에 수원, 화성, 오산, 안성시 등 경기 남부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KTX 경기남부역(가칭)을 신설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철도사업 시행사인 LH가 역 설치 비용(3704억원) 및 운영비 부담을 이유로 사업을 포기하면서 경기도는 해창리 대신 1호선과 환승할 수 있는 지제역으로 경기남부역 위치를 변경했다. 해창리 부지는 결국 용도를 정하지 않은 채 고덕신도시 내 유보지로 남아 있다.
고덕신도시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 유보지가 당초 KTX 역으로 계획됐던 만큼 KTX역을 짓거나,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편의 시설이 들어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덕신도시 입주민들은 지난 4월 평택시 측에 유보지에KTX 설치를 재검토 해달라며 연구용역을 요청했다. 고덕신도시 주민들은 신도시를 조성할 때 유보지와 관련된 비용도 아파트 분양 대금에 포함돼 주민들이 다 부담했고 유보지 역시 그 중 일부라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주민들에게 양해도 없이 정치인들이 땅의 용도를 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고덕신도시 입주 예정자A씨는 “고덕신도시 도시 계획하면서 산정한 교통부담금이 있고, 입주자들이 부담했기 때문에 땅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권리가 있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정치인들이 자기들 맘대로 이 자리에 집을 짓는다고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 유보지 인근에는 아직도 기본적인 생활 기반시설이 열악한 상태여서 주택 용지로 사용하기에 적절한지도 논란이다. 현재 이 일대는 미 군사시설인 ‘알파탄약고’ 이전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개발이 제한돼 있어 기존 도시계획상 예정된 학교, 상업시설, 대중교통 등의 생활 편의시설이 미비하다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보도자료에서 ‘편의시설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정반대의 말이 적어 놓았다.
파주운정지구 주민들도 3지구 내 유보지를 주택 용지로 용도변경한다는 소식에 반발하고 나섰다. 인근 주민들은 “3지구 유보지는 운정신도시에 자족시설 용지로 활용하기 위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라며 “유보지에 자족시설 기능 없이 공동주택만 들어오게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여당이 공급 목표 수치를 달성하기 위해 주민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주택 공급은 결국 주민들의 반발에 막혀 사업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앞서 정부과천청사 유휴부지에 주택 4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도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8·4대책에서 발표된 노원구 태릉골프장, 5·6대책에서 발표했던 용산역 철도정비창 등 다른 부지에서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사업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더구나 현재도 주택 수요가 많지 않아 2기 신도시에 유보지를 이용해 추가 주택을 짓는다고 해도 실제 주택 가격 안정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택 수요가 없어 땅값이 싼곳에 무더기로 집을 짓겠다는 정책을 발표해 겉보기에만 ‘숫자’를 부풀리는 것은 정치권과 관료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주택 공급 부족상황이 심각해지자, 더불어민주당이 이 수법을 다시 동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은 "유보지로 거론되는 지역은 사전청약을 앞둔 3기 신도시와 비교해도 입지가 좋은 편은 아니어서, 그런 곳에 집을 지어봐야 집값 안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숫자로 눈속임하는 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보다는 가만이 있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