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집 300m 옆 폭탄 창고…탄약고 숨기고 신도시 강행한 LH

뉴스 평택=장귀용 기자
입력 2021.08.11 11:58 수정 2021.08.11 14:15

[탄약고 안고 사는 고덕신도시]②탄약고 이전은 뒷전…신도시부터 강행한 국토부·LH

[땅집고] 경기 평택 고덕신도시 입주민들이 LH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자 제공


[땅집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탄약고가 코앞에 있는데 정말 불안하죠. 더 큰 문제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학교도, 마트도, 교통도 아무것도 제대로 갖춰진 게 없습니다. 이런데도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입주자모집 당시 단순히 ‘혐오시설이 있다’라고 문서상 고지했으니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하다니….”(경기 평택시 고덕신도시 파라곤아파트 입주민 A씨)

경기도 평택시에 조성 중인 고덕국제화계획지구(이하 고덕신도시) 한복판 미군 탄약고 때문에 1만명이 넘는 아파트 입주민이 매일 불안에 떨고 있는 가운데 신도시 개발 주체인 국토교통부와 LH가 사업 초기 부대 이전에 대한 확답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아파트 분양을 강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주민 안전은 뒷전에 둔 채 땅장사만 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덕신도시는 평택시 서정동·장당동·고덕면 일대 1342만2000㎡에 아파트 5만9500가구, 인구 약 6만명을 수용할 계획이다. 현재 아파트 13개 단지, 6000여가구가 입주했다.

☞관련기사:[탄약고 안고 사는 고덕신도시] ①고덕신도시 한복판에…폭발물 가득 미군 탄약고가

■ 탄약고 이전 확약도 안 받고, 아파트부터 지었다

2003년 2기 신도시로 지정된 고덕신도시는 미군 알파탄약고 이전을 전제로 계획했다. 탄약고 위치가 신도시 핵심부에 있는 데다 규모가 커서 이전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힘들었다. 미군과 국방부도 알파탄약고를 2016년까지 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 일대로 이전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땅집고] 고덕신도시 내 알파탄약고 위치. /장귀용 기자


그러나 LH는 고덕신도시 2단계 입주자 모집 과정에서 사실상 탄약고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5월 분양한 고덕파라곤2차 아파트 입주자모집공고문을 보면, 깨알같은 글씨로 ‘혐오시설’이라는 딱 네 글자만 언급했을 뿐 정확한 내용은 부지 현장을 직접 방문하라고 돼 있다. 고덕파라곤 아파트 입주민은 “청약 당시 고덕신도시에 쓰레기소각장이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어 미군 탄약고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LH는 계약자의 미확인 등에 따른 이의제기는 불가능하다고 못박기도 했다.

[땅집고] 고덕신도시 2단계 부지에 위치한 고덕파라곤2차 아파트입주자모집공고문. LH는 단순히 "혐오시설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라고만 표시했다. /독자 제공


LH가 2016년까지 탄약고를 이전할 것이라고 믿은 근거는 국방부와 미군의 부대이전 계획 발표뿐이다. 땅집고 취재결과, LH는 국방부나 주한미군과 탄약고 이전에 대한 어떤 별도 협의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군으로부터 소유권을 확보하지도 못했고, 미군 부대가 약속대로 이전한다는 확실한 보장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아파트 분양부터 시작한 것이다. LH 관계자는 “지구지정 당시에는 미군이 아파트 입주 전인 2016년까지 이전할 것으로 봤다”면서 “국방부나 주한미군과 별도 협의나 협약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땅집고] "땅장사만 하는 LH는 각성하라'며 평택 고덕신도시 입주민들이 내건 현수막. /독자 제공


■ 신도시 개발 언제 끝날지 몰라…2025년 목표도 힘들 듯

미군 알파탄약고 이전 지연으로 고덕신도시 전체 개발 일정에도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고덕신도시는 3단계로 나눠서 진행 중이다. 그러나 3단계는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사업 예정지 한복판 알파탄약고가 언제 옮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알파탄약고 주변에는 공동주택 7개 블록(5000여가구), 이주자택지, 근린상가 등이 개발될 예정이다. 그러나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9조에 따라 알파탄약고와 주변 지역 244만㎡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개발행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심지어 토목공사조차 진행하지 못해 아름드리나무와 잡초가 무성한 상태로 방치된 상태다.

LH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3단계 택지 일부에 대해 2023년까지 먼저 분양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LH관계자는 “미군 부대 조기 이전을 촉구하면서, 우선 군사시설보호구역이 아닌 지역부터 택지를 조성할 예정”이라며 “현재 3단계 부지 내 아파트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개발행위를 신청했다”고 했다. 그러나 주한미군과 국방부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개발행위를 할 수 없다.

LH는 사업 준공시기도 당초 2013년에서 2020년 말로 연기한 데 이어 최근 2025년 말로 또 다시 늦췄다. 현재로서는 2025년 준공 일정도 지키기 힘들다는 전망이 많다.

전문가들은 미군 기지가 이전할 것이란 기대감만 갖고 신도시 개발을 시작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군부대 이전을 담당한 적이 있는 군 출신 관계자는 “신도시 개발 계획은 부대이전이 완료된 이후 수립해 토양 오염 조사와 토지 수용 등을 거친 뒤에야 본격 추진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전북 전주시는 에코시티 개발 당시 기무부대 이전이 끝난 후 개발을 시작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LH가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이유가 LH로서는 사업 지연이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LH는 2009년 이미 토지 수용을 끝냈다. 매년 공시가격이 오르면서 분양을 늦게 할수록 분양가가 올라가 시행사인 LH에게 이익이다. 실제 고덕신도시는 1차 분양 때와 비교해 공시가격이 30% 올랐다. 현 정부 들어 공시가격 현실화율 추진을 이유로 공시가격을 매년 큰 폭으로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땅값은 더 오를 전망이다. 공공택지에서는 토지가격에 건축비와 가산비를 더해 분양가를 책정한다. 고덕신도시 아파트 입주민 B씨는 “LH가 이미 입주한 6000여 가구의 불편 사항도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또 분양을 진행하는 것을 보니 문제 해결은 아랑곳하지 않고 ‘땅 장사’에만 관심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고 말했다. /평택=장귀용 땅집고 기자 jim332@chosun.com,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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