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올해 서울에서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규모가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하는 가운데, 내년과 후년 입주 아파트 물량은 올해보다도 30~40%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서울 아파트 공급은 주로 재건축을 통해 이뤄지는데 초과이익 환수제·안전진단 등의 규제로 재건축 추진이 꽁꽁 묶인 탓이다. 더구나 지난 3년간 재건축 첫 관문인 안전진단을 신청한 단지 중 통과한 단지는 3분의1에 그쳐 한동안 공급 절벽이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와 숨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재개발·재건축 억제 정책의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서울 주택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27일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 ‘아실’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는 1만9343가구로 지난해(3만9320가구)에 비해 1만9977가구 줄어들 전망이다. 내년(1만3132가구)과 후년(1만1723가구)에는 올해보다 줄어 연간 입주 물량이 2만 가구에도 못 미친다. 서울 25구(區) 중 관악· 구로·금천·도봉·성동 등 5곳은 2023년까지 새로 입주하는 민간 아파트가 한 채도 없다. 이 수치는 입주 시점을 확정한 민간 아파트만 집계한 것으로, 후분양 아파트나 공공주택은 포함되지 않는다.
서울 아파트 공급이 날이 갈수록 급감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아파트 인허가 물량이 급감하면서 이미 예고됐던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연평균 4만3683가구였지만,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8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평균 3만3157가구로 연 평균 1만 가구 이상 줄었다. 심형석 미국 IAU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아파트 공급은 주로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이뤄지는데, 정부가 집값을 통제하기 위해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다수 단지가 사업 진척을 늦춰 공급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8년부터 시행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는 재건축 아파트 공급을 막는 대표적 규제로 꼽힌다. 재건축으로 인한 시세 차익이 적정 수준을 넘으면, 초과분의 최대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주변 시세에 비해 턱없이 낮은 분양가를 강요하는 분양가 규제도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주택 공급을 가로막는 규제로 지목된다.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와 개포주공6·7단지 등이 초과이익 환수제 때문에 추진위 설립을 늦춘 대표적인 단지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재건축의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안전진단 기준이 대폭 강화했다. 그 결과 앞으로 재건축을 통한 공급은 더욱 더 줄어들 전망이다. 최근 매일경제신문이 2018년 이후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국토안전연구원에서 2차 적정성 검토를 받은 단지를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5개 아파트 단지 중 12곳이 안전진단에서 탈락했다. 서울 아파트 단지를 기준으로는 10곳 중 6곳이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는 예비 안전진단과 민간 용역 업체가 진행하는 1차 정밀 안전진단,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국토안전연구원이 진행하는 2차 적정성 검토로 단계가 나뉜다. 2018년 2월 정부는 안전진단 평가항목에서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기존 20%에서 50%로 높였다. 여기에 더해 공공기관에 2차 적정성 검토를 받으라는 규정을 신설했다. 주거 환경이 열악해도 붕괴 위험이 있는 단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정비사업의 첫 단계인 안전진단을 통과하기가 어려워졌다.
주택 업계에서는2차 적정성 검토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업무를 맡는 만큼 정부가 정책 기조만 바꿔도 안전진단 통과 단지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구조안전성 가중치는 정권에 따라 변화했다. 2006년 노무현정부에는 50%이던 것이 이명박정부에는 40%, 박근혜정부에서는 20%까지 낮아졌다가 문재인정부 들어 다시 50%까지 높아졌다. 안전진단 평가항목은 국토교통부 고시에 규정돼 있어 국회에서 별도 입법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문재인정부가 실패한 부동산 정책 기조를 수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과거 정부에 비해 높아 정부가 근본적인 정책 변화에 나설 여지가 없다. 이에 따라 당분간 집값과 전·월세 상승세가 계속 이어져 무주택자들의 고통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집값을 통제하려 시행한 재건축 규제가 오히려 대다수 단지에서 사업 진척을 늦춰 공급을 줄여 집값 상승에 불을 지폈다”며 “지금이라도 안전진단을 비롯한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 주택공급을 늘려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현 정부에서 그런 기대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