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10m 앞에 20층 건물이라뇨" 날벼락 맞은 아파트의 절규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1.07.28 03:16
[땅집고]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5가 '반도보라빌' 아파트 외벽에 지식산업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네이버 로드뷰


[땅집고]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5가 ‘반도보라빌’. 올해 입주 20년된 최고 15층, 총 67가구의 낡은 나홀로 아파트다. 하지만 지하철 2·9호선 당산역까지 걸어서 3분 걸리는 초역세권이어서 실거주용으로 인기가 높다.

최근 이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거실창에서 불과 10m 떨어진 땅에 90m 높이 고층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선다는 것. ‘반도보라빌’ 아파트가 27.5m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파트 코앞에 약 3배 높이 건물이 장벽처럼 지어지는 셈이다.

[땅집고] 약 27.5m 높이 '반도보라빌' 아파트 거실창 코 앞에 90m 높이 지식산업센터가 건립될 경우 입주민들의 일조권 피해가 불가피해진다. /이지은 기자


지식산업센터 부지는 1950년 창립한 염료회사 이화산업이 보유 중인 공장부지로 9573㎡ 규모다. 공장 가동 중단 후 오랜 기간 방치됐다. 이 땅을 영흥개발이 450억원에 사들였고, 지하 4층~지상 20층, 연면적 2만5000평 규모 지식산업센터를 짓기로 한 것. 지난해 8월 영등포구청으로부터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시공은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가 맡았다.

[땅집고] '반도보라빌' 각 가구 발코니 난간마다 지식산업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줄줄이 걸려 있다. /네이버 로드뷰


지식산업센터가 아파트를 가로막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 아파트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외벽에 ‘아파트 10m 앞에 90m높이 공장이 웬 말이냐’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가구마다 거실 발코니 난간에도 ‘건축허가 결사반대’,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이다’라는 현수막이 줄줄이 걸려있다.

입주민 A씨는 영등포구청 홈페이지 청원 게시판에 “만약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선다면 ‘반도보라빌’ 아파트 입주민 조망권은 물론 일조권이 침해되면서, 낮에도 단 1초도 햇빛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땅집고] 건축법상 주거지역 외 용도인 부지에 짓는 건물은 인접 대지 경계선에서 50cm만 띄워서 지으면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지은 기자


하지만 영등포구청 측은 ‘반도보라빌’ 거실창 코 앞에 고층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서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부지가 준공업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것. 준공업지역이란 경공업이나 환경오염이 적은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땅으로, 공장뿐 아니라 주거·상업·업무시설도 지을 수 있다.

현행 법상 준공업지역에 짓는 건축물은 일조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 건물이 아파트 등 주거용일 때도 예외는 없다. 건축법 제 61조가 전용주거지역과 일반주거지역에 짓는 건축물에 대해서만 일조 등의 확보를 위해 건물 이격거리를 지켜야 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 높이가 9m 이하일 경우 인접 대지경계선으로부터 1.5m 이상 ▲건축물 높이가 9m 를 초과하는 경우 해당 건축물 높이의 2분의 1 이상이다.

전용주거지역과 일반주거지역 외에 건물을 짓는 경우라면 지방자치단체가 따로 조례로 정하지 않은 이상 민법에 따라 최소 50cm 간격만 띄우면 새 건물을 건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준공업지역에 지은 아파트 ‘반도보라빌’은 법적으로 일조권을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다.

[땅집고] 서울 자치구별 준공업지역 면적 순위. /이지은 기자


‘반도보라빌’ 입주민들은 “건축법은 이해하지만 준공업지역에 들어선 건물이라도 주거용이라면 상식적으로 구청에서 최소한의 일조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등포구 준공업지역 면적은 총 502만㎡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다. 전체 구 면적의 2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 중 적지 않은 부지에 아파트가 몰린 만큼 최소한의 주거권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입주민들 민원이 빗발치자 영등포구청은 구청과 시행사, 입주민 3자 협의체를 구성하고 입주민 의견을 일부 반영해 지식산업센터 설계를 변경해 건축심의를 다시 진행할 계획이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원래 지식산업센터를 최고 20층 4개동으로 짓기로 했는데, 이를 최고 35층 2개동으로 변경해 ‘반도보라빌’ 거실창으로 어느 정도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설계안에 대해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아직 해당 설계가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 협의가 마무리되는대로 이르면 내년 상반기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다행히 ‘반도보라빌’ 입주민은 일조권을 일부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건축법상 시행사가 준공업지역 아파트 입주민들을 배려하기 위해 설계를 변경하거나 사업을 포기할 의무는 없다”며 “주거지역 아닌 부지에 있는 아파트를 매수할 때는 이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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