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서초구 반포동 대표 아파트인 ‘래미안퍼스티지’. 총 2444가구 대단지인데 3일 현재 온라인 부동산 사이트에 나온 전세 물건은 달랑 5건이다. 선호도가 높은 84㎡(이하 전용면적)는 22억원에 단 1건 나와 있다. 지난 5월 29일 꼭대기층인 31층 전세 물건이 18억원에 계약된 이후 불과 5일 만에 호가가 4억원이나 치솟았다. 바로 옆 ‘반포센트럴자이’ 아파트는 총 757가구 단지인데 전세 물건은 한 건도 없다. 반포동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는 씨가 말라 물건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며 “부르는 게 값인 데다 나오기 무섭게 계약이 이뤄진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전세 시장이 안정을 찾아간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은 딴판이다. 곳곳에서 전세 품귀 현상을 보여 세입자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올 하반기에만 재건축 사업을 위해 약 4000가구 이주가 예정된 서초구에서는 전세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아크로리버파크’ ‘반포자이’ 등 대부분 단지에서 전세금이 한 달여 만에 수억원씩 오르고, 수요가 많은 84㎡ 전세 물건은 손에 꼽을 정도다.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전세난은 더욱 심화할 우려가 크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시행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가 전세 품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번 전세 계약을 체결하면 임대료를 올리거나 세입자를 내보내기 어려워지는만큼 집주인들이 전셋집 공급을 꺼리는 것. 여기에 아파트 공시가격 급등과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상으로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 집주인들은 세금 낼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아 전세 공급은 더 줄었다.
서초구 반포동 일대는 전세난이 극심하다. 이 일대에서 하반기에만 약 4000가구가 재건축을 위해 이주하기 때문이다. 서초구는 하반기에 2120가구 규모의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부터 ▲신반포18차(182가구) ▲신반포21차(108가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1490가구) 등이 줄줄이 이주에 나선다. 서초구에서는 이미 지난해 이후 재건축 공사에 들어간 ‘반포래미안원베일리’ ‘반포르엘’ ‘반포르엘센트럴’ 등지에서 나온 이주자들이 전세를 대부분 차지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서초구에서 이주가 본격화되면 이웃 지역을 넘어 서울 전체로 전세난이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미 동작·용산구 등 서초구와 가까운 아파트는 전세 매물이 귀해진 상태다. 동작구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 84㎡는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10억원이면 전세를 구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최소 13억원으로 호가가 뛰었다. ‘롯데캐슬에듀포레’는 지난 5월5일 6억5000만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13억원에 단 1건만 매물이 나와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와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가 급감할 것으로 보여 전세난 장기화를 우려한다. 여기에 올 6월부터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된 것도 전세 매물을 더욱 감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한 임대차법 때문에 세입자들이 기존 주택에 눌러앉으며 의도와는 정반대로 임대차 시장 시세 급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했다. /장귀용 땅집고 기자 jim33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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