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에 5만가구 분양하겠다던 정부의 새빨간 거짓말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1.06.01 11:41

[땅집고] 서울 중구 세운지구 전경. /이지은 기자


[땅집고]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2021년 서울에 새 아파트 4만8000~5만 가구 정도가 분양할 계획이라는 예상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서울에 실제 분양한 아파트는 단 6개 단지, 1357가구에 불과하다. 이달 첫째주 서울 새 아파트 분양 물량은 ‘제로(0)’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산술적으로 지금쯤이면 적어도 1만6000~1만7000가구는 시장에 나왔어야 하지만, 실제 분양 물량은 예상치의 8%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4년간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공급 확대’로 방향을 전환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파트 분양 물량이 좀처럼 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여전히 각종 수단을 동원에 주택 공급량을 줄이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는 올해 들어 국토부 산하 기관인 한국부동산원(옛 감정원)까지 동원해 가격 통제에 나선 것도 주택 분양 물량 감소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중구 세운지구 3-1·4·5구역에 2019년 분양할 예정이었던 ‘세운 힐스테이트 센트럴’ 아파트. 서울 한복판에 1022가구 규모로 들어서는 단지로 관심이 높았지만 2년여 지난 지금까지도 분양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통제로 분양가가 너무 낮은 게 문제였다. 작년 7월 분양가 상한제 부활 이후로는 한국부동산원의 택지비 감정평가에서 연달아 퇴짜를 맞았다. 이 아파트 관계자는 “지난 3월과 5월 부동산원이 ‘감정평가 금액에 미실현 개발 이익이 반영됐다’는 이유로 재평가 판정을 받았다”며 “한마디로 감정평가 금액이 너무 높아 분양가가 높아질 것 같으니 감정평가금액을 낮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 들어 분양가 산정 과정에서 한국부동산원과 갈등을 겪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고 있다. 통상 분양가상한제를 적용 받는 아파트 단지 분양가는 ‘택지비+기본형건축비+가산비’로 정한다. 그런데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택지비다. 그런데 국토부의 지침을 받고 있는 한국부동산원이 최근 들어 택지비가 ‘너무 비싸다’고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부동산원, 새로운 분양가 통제 기관으로 등장

[땅집고] 분양가상한제 주택가격 산정 방식. /이지은 기자


지난해 7월 서울 등 주요지역에서 민간 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될 때만 해도, 대부분의 아파트 사업장은 분양 사업 수익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몇 년 국토교통부가 공시지가를 큰 폭으로 올리면서, 기존 HUG의 고분양가 관리제보다는 국토부의 분양가상한제가 더 높은 분양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는 분양 원가에 일정 이윤을 더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택지비가 오르면 분양가도 오른다. 이 택지비는 해당 구청에서 감정평가사에 의뢰해 평가한다. 서울처럼 땅값이 비싼 지역에선 아파트 분양가의 70% 정도가 택지비가 차지한다. 예를 들어 이달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분양 예정인 ‘래미안 원베일리’의 3.3㎡(1평)당 택지비는 4202만원으로, 분양가의 74.1%를 차지했다.

문제는 아파트의 택지비를 검토하는 한국부동산원이 택지비가 너무 높다며 줄줄이 퇴짜를 놓고 있는 것.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들어 9월 말까지 분양가상한제 대상 사업자 7곳 모두가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택지비 감정평가 재평가 통보를 받았다. ▲서초구 서초동 1486-17 공동주택 신축공사 ▲서초동 낙원·청광연립 가로주택정비사업 ▲강동구 상일동 벽산빌라 가로주택정비사업 ▲둔촌동 632 민영주택건설사업 ▲강서구 공항동 발쿠치네하우스 민영주택사업 ▲양천구 신월동 스위트드림아파트 ▲은평구 역촌동 역촌1주택재건축정비사업 등이다. 재평가에서 서초구 서초동 ‘낙원·청광연립 가로주택정비사업’ 한 곳을 제외한 6곳 사업장은 모두 택지비 감정평가 금액이 내려갔다.

[땅집고] 2020년 한국부동산원의 택지비 감정평가 검토 내역(2020년 9월 기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실


올해 들어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세운 힐스테이트 센트럴’뿐만 아니라, 당초 지난해 분양할 계획이었던 ‘래미안 원베일리’도 택지비 문제를 두고 한국부동산원과 수개월 동안 씨름하다가 올해 6월에서야 분양을 시작한다.

한국부동산원이 계속해서 ‘택지비 퇴짜’를 놓는 바람에 아파트 공급 계획을 분양가 책정이 자유로운 도시형생활주택이나 생활형숙박시설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규제가 없는 주택상품을 찾아 일종의 편법 분양에 나선 것이다. 서울 중구 세운지구 6-3-4구역을 재개발하는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의 경우 당초 614가구를 모두 아파트로 분양할 계획이었지만, 분양가 규제를 받으면서 293가구를 도시형생활주택으로 전환해서 공급한 바 있다. 이 단지 도시형생활주택 3.3㎡당 평균 분양가는 5900만원대로, 아파트(2096만원)의 두 배 이상이었다.

■ 한국부동산원 “택지비 통제하지는 않았지만, 통제했다” 황당 해명

주택건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분양 물량이 계획치(6만6656가구) 대비 42%인 2만8100가구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한국부동산원의 택지비 통제나 HUG의 고분양가 규제 등 분양가와 관련한 각종 규제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땅집고] 공동주택 분양가격의 산정 등에 관한 규칙. /국가법령정보센터


그러나, 한국부동산원은 평가관리처 적정성검토부 관계자는 “택지비 검토 과정에서 본원은 택지비를 특정 금액을 기준으로 높이거나 낮추라는 내용으로 요구한 사실이 없다. 따져 재평가 여부 결정을 내리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재평가를 한다는 것은 “이 가격에는 분양하지 못하니, 더 낮게 써 오라”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통제하지 않았지만, 통제한다”는 황당한 해명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분양가를 통제하는 것이 건설사의 폭리를 줄이고, 무주택 서민을 위한 정책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평가한다. 서울 아파트는 현 정부 들어 가격이 폭등해 반값 분양을 해도 무주택 서민들에게 ‘그림의 떡’이 됐다. 서울 아파트는 대부분 분양가가 9억원 이상으로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다. 결국 현재 분양 시장에서 현금 동원 능력이 있는 ‘무주택 중산층’ 혹은 ‘현금 부자’들이 반값에 아파트 분양 받아 엄청난 불로소득을 올리는 셈이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정부나 여당 내부에서 분양가 통제정책 비롯한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동력이나 세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분간 신규 분양 물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이것이 집값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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