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들어설 ‘부평역 해링턴 플레이스’ 아파트는 당초 지난 4월 분양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 심사 과정에서 준공 10년 넘은 주변 아파트 시세의 90%선인 3.3㎡(1평)당 1500만원으로 분양가를 맞추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관계자는 “1년 전에 분양했던 아파트도 평당 1698만원을 받았다”며 “주변 아파트가 아무리 없다고 해도 준공 10년된 아파트에 맞춰 분양가를 정하라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HUG가 지난 2월 고분양가 심사 제도를 개편한 지 석달이 지났지만, 분양가를 둘러싸고 건설업계와 HUG간 마찰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HUG가 ‘주변 단지 90%’로 정한 분양가 상한선이 해당 지역의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크다. 심사기준 개편 이후 일부 지역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높은 분양가가 산정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오히려 분양가가 더 낮아져 소위 ‘복불복’이란 비아냥까지 나온다.
■신축 몰린 대구에서는 역대 최고 분양가 나와
과거 HUG의 고분양가 심사 규정 중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이 ‘주변에서 1년 이내 분양한 아파트 분양가’를 상한선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신규 분양이 계속되는 지역에서는 몇 년이 지나도 분양가가 오를 수 없는 구조였다. HUG는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지난 2월 9일 고분양가 심사 제도를 개편했다. 개편안은 해당 사업지 반경 1㎞ 이내에서 최근 분양한 ‘분양 사업장’과 준공 10년 이내 ‘준공 사업장’ 두 곳을 비교해 이 중 높은 금액으로 분양가를 정하는 것이 골자다. 분양시장과 기존 주택시장 상황을 모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준공 사업장의 경우 과거에 없던 ‘주변 아파트 시세 90% 상한’이라는 단서가 달렸다. 반경 500m 이내에 있는 ‘준공 20년 미만 아파트’ 매매가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이 아파트 시세의 90%(투기과열지구 85%)를 넘을 수 없도록 하는 것.
최근 분양가 산정을 둘러싼 분쟁은 아파트가 지어지는 지역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주변 아파트 시세 90%를 상한으로 하기 때문에 주로 발생한다. 인천 ‘부평 SK뷰 해모로’의 경우 주변에 최근 분양 단지가 있었지만 완공된 아파트 중 가장 최근에 지은 것이 11년차인 ‘부평주공2단지’다. 부평주공2단지는 684가구에 소형 위주 단지인 데다 지하철역까지 거리도 멀다. 전용 73㎡ 매매가격이 최고 2억2500만원에 그친다.
반대로 최근 신축한 아파트가 몰린 지역에서는 분양가가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대구 수성구다. 수성구 만촌동에 들어서는 ‘힐스테이트 만촌역’은 분양가가 평당 평균 2450만원으로 대구 역대 최고 분양가를 기록했다. 전용 84㎡는 최고가가 8억9926만원에 달한다. 2019년 대구에서 가장 비싼 평당2058만원에 분양한 수성구 ‘범어W’ 보다 약 20% 상승했다. 인근에 신축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 ‘시세 90% 상한’이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 부산 재개발 아파트 후분양으로 전환
건설업계에서는 HUG 분양가 제도 개선으로 이제는 주변 시세의 90% 수준에서 적정한 분양가 책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실제 그렇게 된 사례도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이전보다 못한 분양가를 받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일부 아파트는 아예 후분양으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통한 아파트 공급이 막 시작한 지역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부산 사하구에서 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인 괴정 5 구역(3521가구)은 최근 시공사와 협의해 후분양을 확정했다. 뿐만 아니라 동래구 명륜2구역과 온천4구역도 HUG의 분양가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후분양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 지역들은 인근에 지은 지 20년 이상된 아파트와 노후 저층 주거지가 즐비하다. 괴정5구역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분양 방식을 고려하는 단계에서 HUG의 분양가 통제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 “HUG, 분양가 통제 손 떼고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업계에서는 신규 주택 공급이 시급한 노후 저층 주거지에서 신축 공급이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는 곳에는 분양 사업이 활발한 반면, 비인기지역에서는 사업 참여 의욕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현재 HUG의 보증심사 제도는 서울·수도권과 지방, 같은 권역 내의 도심지와 외곽지의 공급 격차를 더욱 벌릴 우려가 있다”고 했다.
애초에 HUG가 ‘분양 리스크 관리’가 아닌 ‘분양가 통제를 통한 집값 잡기’를 목표로 하는 한 심사 기준을 다시 개편하더라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HUG가 주장하는 모든 사업지에 적합하게 적용 가능한 ‘시세반영 공식’은 애초부터 말이 안된다. 비교 대상과 범위에 따라 분양가가 널뛰기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보증 기관 본연의 역할에 맞게 사업 위험도에 따라 보증요율을 달리 설정하는 식으로 실질적인 위험을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