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에 이어 대치동 은마아파트,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등 이른바 강남 대어급 재건축 단지가 공공성 강화에 발목이 잡혀 줄줄이 사업 추진에 급제동이 걸리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집값 불안을 우려해 ‘재건축 속도조절’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아시아선수촌 재건축준비위원회는 10일 서울시가 최근 공개한 지구단위계획안에 반대하는 소유주 436명의 서명을 받아 송파구청에 접수했고, 7일에도 추가로 465명이 반대 서명을 했다고 10일 밝혔다. 소유주 총 1356명 중 901명(66%)이 반대 의사를 밝힌 셈이다. 준비위는 재건축 안전진단도 무기 연기하기로 했다.
아시아선수촌 입주자대표회의와 재건축준비위원회 측은 서울시가 제시한 지구단위계획안이 공공 기여에만 치중해 재건축 사업성을 떨어뜨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구단위계획은 재건축 사업 첫 관문으로 건축물 높이와 용적률, 건축물 용도, 기반시설 등 전반적인 사항을 담은 밑그림이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계획안에는 1~2인 가구를 위한 특성화 주택을 공급하되, 이를 단지에서 지하철역이 가까운 위치에 배치하고, 또 단지를 관통하는 폭 15m 공공 보행통로를 조성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 아파트 재건축준비위 관계자는 “지구단위계획안에 포함된 공공임대 가구 비중이나 소셜믹스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과 노인을 위한 원룸형 주택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라며 “기존 아파트 주택형이 99~178㎡로 중대형 위주인만큼 임대주택를 만들더라도 넓은 주택형으로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어 “단지 내에 폭 15m 개방형 도로를 만들도록 한 부분은 24시간 내내 이 도로에 차량이 오가면서 단지가 반으로 갈라지는 셈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출전 선수 숙소로 지어졌다가 대회가 끝난 후 일반 분양했다. 지상 18층 총 18동에, 1356가구다. 지난 3월 전용 178㎡가 42억5000만원에 거래돼 송파구 최고가이자 신고가를 기록했다.
이에 앞서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와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역시 비슷한 이유로 재건축 인허가에 제동이 걸렸다. 송파구는 서울시에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정비계획안을 수권소위원회에 상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주민 의견을 더 보완하라며 반려했다.
강남구 역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안을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해 달라고 서울시에 요구했지만 정비계획안 보완 통보를 받았다. 서울시는 계획안에 공공임대 등 소셜믹스를 고려한 공급 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특별건축구역 계획도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오 시장이 재건축을 통한 공급 기조를 포기한 것은 아니겠지만 집값 불안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분석한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시장 교란 행위를 엄벌하겠다고 밝히면서 “(재건축을 통한) 부동산 가격의 불필요한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데 중점을 뒀을 뿐, 앞으로 ‘신속하지만 신중하게’ 기조는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오 시장은 재건축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기존 서울시 입장을 유지하는 형태를 취했지만 그동안 취임하면 곧바로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고 공언한 것을 감안할 때 속도가 후퇴한 것은 사실”이라며 “집값 상승 부담이 있고, 임기가 짧아 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정부 협력이 필요한 만큼 당분간 정부와 협력하는 제스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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