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 2주일 만에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등 4개 지역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카드를 꺼내들자, 시장에서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오 시장이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는 공약과 정반대로 거래를 옭아매는 규제를 첫 카드로 내놓은 탓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허가구역으로 묶인 지역에서 집값이 떨어지기는 어렵다고 예상한다.
서울시는 21일 서울 압구정 아파트지구(24개 단지), 여의도 아파트지구와 인근 단지(16개 단지), 목동 택지개발사업지구(14개 단지), 성수 전략정비구역 등 모두 4.57㎢을 이달 27일부터 1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일정 규모(주거지역 18㎡·상업지역 20㎡ 초과) 이상의 주택·상가·토지 등을 거래하기 위해서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파트는 사실상 2년 이상 실거주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매입이 가능하다.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집값을 안정시키는데 실효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토지거래허가제는 이미 작년 6월부터 서울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 지역은 거래 건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오히려 매매가격은 상승했다.
심형석 미국 SWCU 교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지정돼도 팔겠다는 입장에서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실거주 수요자는 거래 허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 낮아질 이유가 없다”며 “이번에 지정된 곳도 전세 낀 매수 등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거래량은 줄겠지만, 전반적인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선되면 일주일 안에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고 공약했다. 이런 상황에서 첫번째 부동산 대책이 규제책이었다는 점이 의외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오 시장이 앞으로 재건축 규제 완화에 앞서 집값 급등의 책임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계산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 카드를 꺼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오 시장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오히려 약속대로 재건축 규제 완화를 조만간 시행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 역시 이날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투기 수요 차단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며 “주택 시장 안정화를 위한 공급 확대는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택 공급 억제의 주된 요인으로 지적되는 재건축 규제 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현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오 시장이 규제 완화와 함께 투기 방지라는 대의명분을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꺼내든 카드”라며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집값 상승 요인 중 하나인 구매 심리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상혁 땅집고 기자 hsang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