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한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왔는데 보상비 몇 푼 받고 다른 데로 떠나라니 반가울 리가 있습니까? 더구나 LH 투기 사태 이후로는 완전히 나라를 못 믿게 됐습니다.”
정부가 3기 신도시인 경기 하남시 교산지구 토지 보상 절차를 시작했지만, 이 지역 원주민들은 지장물 조사를 전면 거부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신도시 원주민들은 지난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터진 이후 “국가가 주도하는 보상 절차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LH 사태 이후 신도시 토지 전수 조사를 위해 보상 절차가 멈춘 상황에서 주민들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보상 일정이 점점 밀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3기 신도시인 경기 하남시 교산지구 사전청약 일정을 오는 11~12월로 못박았지만 일정을 맞추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남 교산지구는 3기 신도시 6곳 중 입지가 가장 좋다고 꼽힌다. 하남시 교산동·춘궁동·항동 등 8개동 649만㎡(약 196만3000평)에 2028년까지 3만2000가구 규모로 개발하는데, 지구 안에 서울과 직통으로 연결하는 지하철 3호선 신설역 3개가 생길 예정이라 예비청약자들의 기대감이 높은 곳이었다. 지난해 8월 보상공고를 내고 1만400여필지, 4100여명을 대상으로 토지보상을 시작했다. 하남교산 공공주택지구 주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달 30일까지 토지보상 진행률은 소유자 기준 52%, 보상액 기준 50%에 못 미친다.
이런 가운데 원주민들이 ‘하남교산 공공주택지구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지장물 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3기 신도시 입주 일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책위원회는 교산신도시 공동사업시행자인 LH·경기도시주택공사(GH)·하남도시공사 등 3개 공공기관에 지장물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농사 짓던 땅이 3기 신도시로 수용된다고 해서 불만이 많았는데, LH 사태 때문에 국가의 보상 절차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커졌다”고 말했다.
■ 교산지구 원주민들 “지장물 조사 원천 봉쇄할 것”
신도시 보상 절차에서 토지를 제외한 지장물(공공사업 시행 지구에 속한 토지에 속한 물건으로 수용하지 않고 보상하는 것)에 대한 보상은 전액 현금으로 지급한다. 건물·수목·비닐하우스 등 지장물 조사는 조사·평가할 대상물이 많고, 토지 보상에 비해 주민들의 협조가 더 필요한 작업이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편이다. 지금처럼 주민들이 현장을 봉쇄하고 지장물 조사에 반대하고 나서면 LH가 보상 절차를 강행하기가 불가능하다.
당초 교산신도시 지장물조사는 지난 2일 실시하기로 예정됐었다. 그러나 조사 당일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터지면서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로 조사는 전면 중단됐다. 현재까지 건축물대장 기준으로 교산신도시 지장물은 4500여 건인데, LH에 지장물조사를 접수한 원주민은 200여명에 그치는 데다가 이마저도 대부분 토지주가 아닌 임차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신도시 사업을 진행할 때는 토지보상과 지장물 조사를 끝낸 뒤 협의 보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산신도시 사전 청약과 착공 일정 등을 고려하면 적어도 4월 말까지는 토지보상 협의를 마쳐야 하는데, LH 사태로 주민 여론이 악화되면서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강봉 하남교산 공공택지지구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LH 직원이 원주민을 가장해 땅 투기로 막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라며 “(토지거래) 전수조사로 미심쩍은 부분이 해소될 때까지 지장물 조사를 원천 봉쇄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일정도 미뤄질 가능성 높아
그럼에도 LH 는 예정대로 하남 교산신도시 사전청약이 오는 11~12월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인천 계양은 5월, 하남 교산은 7월에 토지 보상을 모두 마칠 생각”이라며 “전사적 역량을 동원해 사전청약 등 사업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LH가 목표 시점까지 토지보상을 마무리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3기 전체 신도시 아파트 공급 일정을 맞추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교산신도시 외에도 3기 신도시 토지주들이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공전협)’을 꾸리고 정부·LH의 모든 행정절차에 대한 협의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상황이기 때문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3기 신도시와 관련한 일정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공표한 약속이라 쉽게 저버릴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토지 소유주들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에 문제가 생긴다면 향후 사전청약 일정은 물론 공급물량, 입주시기까지도 변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말했다. /하남=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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