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지난 27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3번 출구로 나와 대로변 안으로 한 블록을 걸어가자 빌라와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저층 주거지가 나왔다. 현재 이 일대 다세대주택은 국토교통부가 주택 공급 방안으로 검토 중인 ‘역세권 고밀개발’ 대상지로 거론되면서 집값이 급등했다. 불광동 좋은집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연신내역 주변으로 평균 2억원 미만 빌라들이 한두 달 만에 1억원씩 뛰어 3억원대가 됐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9일 ‘역세권 고밀개발’을 주택 공급 대책으로 거론하면서 서울시내 곳곳에서 역세권 빌라(다세대·연립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교통 여건이 좋은 역세권에 대해 높은 용적률 인센티브를 줘 주택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고 공언하면서 개발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밀 개발에는 변수가 많아 실제 개발로 이어지는 사업지가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서울 역세권 빌라 가격, 6개월 만에 30~40% 급등
연신내역에서 350m 정도 떨어진 ‘리치에비뉴’ 연립주택 44.7㎡(이하 전용면적)는 지난해 12월 중순 4억1500만원에 거래됐다. 작년 6월만 해도 3억4700만원에 거래됐다. 6개월 만에 7000만원 정도 오른 것. 녹번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역세권 고밀 개발을 발표한 12월 이후 집주인들이 아예 매물을 거두거나 안 팔리던 매물이 순식간에 계약되고 있다”고 했다.
마포·영등포구 등 저층 주거지가 많은 역세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영등포구 대림동 현대그린빌라 72.72㎡는 지난달 12일 4억5500만원에 거래돼 6개월 전보다 1억원 뛰었다. 지하철 6호선 DMC(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320m 떨어진 마포구 삼일신혼빌라 44.64㎡ 역시 같은 기간 1억원 정도 올랐다. 아파트에 비하면 오른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상승률로 보면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다세대·연립주택 가격은 아파트 가격 급등과 전세난으로 지난해 초부터 강세였다. 주거 환경은 다소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해 실수요가 몰렸던 탓이다. 여기에 역세권 고밀 개발 계획은 기름을 부은 셈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다세대·연립주택 거래량은 5249건으로 11월(4310건)에 비해 21.8% 증가했다.
■ “1000가구는 돼야 사업성 있어…후보지 찾기 어려워”
정부는 역세권 고밀개발 계획 후속 조치로 지난 19일 준주거·준공업·상업지역에서만 가능했던 복합용도개발을 일반주거지역까지 확대 적용하는 ‘국토계획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현재 일반주거지역 용적률은 지구단위계획으로 최대 400~500%까지만 완화할 수 있지만, 앞으로 역세권 일반주거지역을 복합용도개발 지구로 지정하면 용적률 700%를 적용한 고밀 개발이 가능해진다. 대상지는 서울 지하철 역세권 100여 곳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 발표만 믿고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역세권 고밀개발도 일종의 재개발 사업인만큼 정부가 용적률을 비롯한 각종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도 결국 토지주인인 주민들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문제는 역세권 재개발 지역은 상가가 많고, 소유자들이 대체로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주민동의율 요건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재개발 조합 설립에 있어 토지·주택 등 소유자 75% 이상 동의율 조건이 획기적으로 낮아지지 않으면 사업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정부가 역세권 고밀개발 전제조건으로 개발이익 환수를 내걸고 있어 사업성 확보는 더 어렵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용적률 완화에 따른 토지가치 상승분을 지자체 조례로 정하는 비율에 따라 공공임대 주택으로 기부채납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용적률 완화로 늘어나는 가구 수의 절반(50%)은 공공임대로, 나머지 절반(50%)은 공공분양으로 하는 계획이 유력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시한 방안대로라면 실제 사업이 진행될 수 있는 지역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조그만 사업장은 도로, 쌈지공원, 주차장 등 필수적으로 빠져나가는 공공용지(기부채납) 비율이 높은 데다, 증가되는 용적률의 50%까지 임대가구로 돌리면 사업성과 이용가치에 한계를 느끼는 곳들이 많다”고 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200~300가구 규모가 아니라 1000가구 안팎 대규모 사업지여야만 늘어나는 용적률 인센티브에 대한 기부채납분을 감당할 여력이 있을 것”이라며 “역세권에 이 조건을 충족해 실제 사업이 가능한 지역은 현저히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구체적인 개발 방안을 내놓기도 전에 계획만 발표하면서 땅값이 급등한 것도 문제다. 주용철 세무법인 지율 대표세무사는 “서울 강북만 해도 역세권 땅값이 3.3㎡ 당 7000만~1억원 정도로 이미 크게 오르면서 조합원 권리가액과 현금 청산비용이 덩달아 올랐다”며 “지금 같은 분양가상한제 하에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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