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오피스텔 사건으로 인생 파탄"…발칵 뒤집힌 시골 동네

뉴스 한상혁 기자
입력 2021.01.19 07:42 수정 2021.01.20 15:09
[땅집고] 지난해 9월 초 충남 서산경찰청 앞에서 이안큐브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가 피해를 본 계약자들이 부가가치세 환급조작 사기를 고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안큐브 계약자 제공


[땅집고] “분양대행 직원들이 ‘명의만 잠시 빌려주면 몇 백만원씩 준다’고 하니 시골 사람들이 깜박 넘어간 겁니다. 돈 몇 푼에 눈이 멀어서, 이렇게 엄청난 사기를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난 15일 충남 서산시 성연면에서 만난 60대 주민 A씨는 ‘이안큐브 서산테크노밸리’(이하 이안큐브) 오피스텔 얘기를 꺼내자 마자,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그는 육두문자까지 섞어가며 “(오피스텔 때문에) 동네사람, 친인척까지 수백명이 얽혀서 온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다”고 털어놨다. 50대 주민 B씨도 “100억대 부자 허모라는 사람이 ‘계약금도 필요 없다. 이름만 빌려주고 싸인만 하면 한 채당 200만~500만 원 준다’고 해서 그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최근 충남 서부지역인 서산시가 때아닌 오피스텔 사기 분양 논란으로 지역 전체가 들끓고 있다.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주민만 300여 명에 달한다. 중도금 대출을 갚지 못해 2억~3억 원대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국세청에 재산을 압류당하고, 부부 싸움 끝에 이혼하거나 심지어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한 주민도 있다.

피해 주민과 공사대금을 떼인 시공사는 법적 대응에도 나섰다. 시공사는 시행사를 고소했고, 충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수사에 나섰다. 피해 주민들은 분양대행사 관계자 등을 고소해 안양 동안경찰서에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도대체 인구 17만명 시골 도시인 서산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땅집고가 서산 현지에 내려가 피해자 10여명과 직접 만나거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관련기사>2020년1월12일자 땅집고 “1000실 완판 무색하게 텅텅…입주민은 조직 분양에 뒤통수"

■ 피해자만 수백명…신용불량에 이혼까지

이안큐브는 유림디앤씨라는 부동산 시행사가 2016년에 분양을 시작한 오피스텔이다. 총 1009실로 서산시 성연면 서산테크노밸리 초입에 지었다. 1채당 3.3㎡(평)당 1000만원 정도에 팔았다. 당시 주변 아파트 시세가 평당 500만원대였다는 점에서 다소 비싸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오피스텔은 입주를 앞두고 “1009실이 전부 팔렸다”며 소위 완판 이벤트까지 벌였다. 그런데 2019년 7월 준공한 이후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 상황은 처참하다. 입주 가구가 고작 210실에 불과한 사실상 유령 건물이 됐다. 444실은 무더기로 계약이 해지됐고, 나머지350여 실도 중도금과 잔금 납부가 연체돼 있다.

완판됐다는 오피스텔이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유림디앤씨 유모 대표는 2016년 분양 초기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하자, 분양대행사 플랜디오스 등과 함께 이른바 ‘조직 분양’에 나섰다. 분양대행사 측이 계약금을 내주는 대신에 ‘분양대행사와 계약자가 공동 사업을 한다’는 내용의 신탁약정서를 쓰는 방식으로 분양한 것. 덕분에 분양 초기 7% 밖에 팔리지 않았던 오피스텔이 준공 무렵에는 기적처럼 100% 팔려나갔다. 당시 서산 주택 시장에선 미분양이 넘쳐났지만, 이안큐브만 완판됐다.

[땅집고] 충남 서산 성연면 테크노밸리 초입에 들어선 '이안큐브' 오피스텔. /손희문 기자


하지만, 다 팔린 줄 알았던 오피스텔은 완공 이후 실체가 드러났다. 사기분양이라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은 “분양대행사가 애당초 오피스텔을 살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 1채당 200만~500만원을 사례금으로 주겠다면서 명의만 빌려 계약서를 썼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인 C씨는 “‘100억대 부자라는 허모씨가 이안큐브 100~200실을 향후 임대사업용으로 쓰려고 하는데, 등기 나올 때까지만 타인 명의가 필요하다. 나중에 오피스텔을 다시 사주겠다’며 주민들을 속였다”고 했다. 이렇게 1인당 2~3채씩 분양 계약을 했고, 일부 주민들은 공동사업이라는 말에 넘어가 자신의 통장과 도장, 현금카드까지 분양대행사에 넘겼다는 것.

이 과정에서 계약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도장을 찍었던 주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됐다. 충남 서산과 당진 지역에서만 주민 290여명이 이 사건에 연루됐다. 가정이 파탄났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경우도 있다. 서산에 사는 계약자 D씨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이 분양사무실, 동네 미용실, 편의점에서도 계약서를 썼다”고 했다. 당진에 거주하는 계약자 E씨는 “대출이 연체돼 재산은 압류됐고 1년 넘게 아내와 싸우다 이혼까지 했다”며 “결과적으로 내 잘못이지만 뭔지도 모르고 쓴 계약서 한장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 영문도 모른 채 재산압류…“환급받은 부가세 토해라” 독촉도

계약을 유지하고 있거나 해지한 주민들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계약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도금 대출 상환이 연체된 계약자 350여명(계약 호실 수 기준)은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는 시공사가 대출금을 갚아주는 대신 구상권을 행사해 계약자 재산 압류에 들어갔다. 문제는 현재 이 오피스텔은 분양가 대비 시세가 반토막 났고, 그마저도 사겠다는 매수자는 없다.

계약을 해지한 주민들은 국세청으로부터 수천만원에 이르는 세금 체납 독촉장을 받았다. 통상 오피스텔을 분양할 때는 부가가치세를 분양가에 포함해 분양하고, 계약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계약 이후 부가세를 환급받는다. 그런데 분양대행사인 플랜디오스는 신탁약정 방식으로 분양하면서 계약자의 통장, 인감증명, 현금카드까지 받아 부가세를 환급받은 후 써버렸다. 문제는 계약이 해지되자 국세청이 기존 계약자에게 “계약이 무효가 됐으니 부가세를 토해내라”고 독촉하고 있는 것. 계약자 1인당 내야 할 부가세가 계약 호실과 건수에 따라 970만~3000만원 안팎이다. 계약자 F씨는 “부가세가 내 통장으로 들어왔는지도 몰랐고, 분양대행사가 그 사실을 알려준 적도 없다”며 “계약을 해지하니 구경도 해보지 못한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고 했다.

[땅집고] 지난해 11월 '이안큐브' 계약자 앞으로 청구된 부가가치세 환급금 반환 고지서. 부가세 원금 2900여 만원에 납부지연가산세 1000여 만원이 붙어 총 3000여만원을 내라는 내용이다. /이안큐브 계약자 제공


■ “계약자는 고통받는데…시행사 대표는 강남서 분양 성공”

부동산 업계에선 공동사업과 신탁약정서를 활용한 분양은 2008년 금융위기 전후 분양 시장이 침체됐을 당시 일부 시행사들이 써먹던 악의적인 분양 수법이라고 말한다. 대형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계약률만 높으면 금융권에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는 줄 알고 대출을 내준다는 점을 악용해 신탁약정서를 앞세워 허위로 계약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라며 “허위로 계약을 만든 뒤 대출을 받아내고 이후에 시행사는 부도를 내거나 문을 닫고 잠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합법·불법 여부를 떠나 악의적인 분양 수법이어서 요즘 정상적인 시행사나 분양회사에서는 이런 분양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안큐브를 분양한 시행사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지만, 이 회사 유모 대표는 다른 시행사 대표로 취임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롯데건설를 시공사로 선정해 고급 오피스텔과 상가를 분양하고 있다. 일부 계약자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사람들 수백명 인생을 망쳐놓고 멀쩡하게 또 오피스텔을 분양해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달 중 유씨의 사업장이 있는 서울 강남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다.

경찰 수사도 마무리 단계여서 조만간 기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충남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일방적인 허위분양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대규모 발생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고, 피해자와 참고인 조사도 마무리 단계”라며 “앞으로 분양 시장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처히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한상혁 땅집고 기자·서산=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분양대행사 허모씨 반론]

이안큐브 오피스텔 분양 과정에서 실무 책임자 역할을 했던 허모씨는 땅집고 취재팀과 가진 통화에서 “정상적인 마케팅 방식에 따른 분양이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허씨의 반론 내용이다.

“계약자 중 일부가 ‘명의 대여 허위 분양’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나한테 그런 약속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나는 (직접) 만나본 적도 없다. 영업사원이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는데, 내가 지시한 것은 아니다. 계약자들이 ‘명의만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분양대행사가 계약금을 대납하는 대신 계약자와 공동 투자하는 마케팅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말 같다. 신탁약정을 맺고 분양대행사와 계약자가 공동 투자 형태로 사업을 진행한 것인데 계약자들이 오해하고 있다. 신탁약정서에 통장·도장·현금카드을 분양대행사에 넘긴다는 내용도 들어있고, 계약자 역시 동의했다. 환급받은 부가가치세는 계약금 대납과 사업비 등으로 사용했다. 부가세는 나눠서 환급되는데, 계약자에게 일일이 알릴 수 없어서 일괄적으로 처리했다. 부가세 환급 나올때마다 계약자들한테 같이 통보가 가고, 통장 비밀 번호를 계약자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본인들 모르게 우리가 돈을 빼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동의 안했으면 비밀번호를 바꿔서 못 빼가도록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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