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분양가 6600억 손해보라니…HUG 난도질에 공급도 뚝

뉴스 손희문 기자
입력 2020.12.31 03:57

대한민국에서는 주택 30가구 이상을 선(先) 분양할 때 반드시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분양보증을 받아야 한다. 아파트를 짓다 부도날 경우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보증 업무를 공기업인 HUG가 독점하는 것. 정부는 HUG를 앞세워 법에도 없는 아파트 분양가를 통제하고 있다. 자유 시장경제에서 상상하기 힘든 HUG 분양 보증 독점의 폐해를 들여다 본다.

[HUG, 분양보증 독점의 민낯]⑤ 터무니없는 분양가 인하 강요에 주택 공급 중단 속출

 


[땅집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강요하는 분양가로는 수익을 낼 수 없어 분양을 미룬 아파트가 수두룩하다. 그렇잖아도 아파트가 부족한데 HUG 때문에 지난 3년간 공급이 꽁꽁 막힌 셈이다. 아파트 값을 올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건가?”(국내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

국내 건설사들과 재건축·재개발 조합 등은 HUG가 민간 아파트 분양가를 통제하는 동안 주택 건설 사업이 크게 위축됐다고 입을 모은다. HUG가 아파트 분양에 필수적인 분양보증서 발급 권한을 독점하고 이를 무기로 사실상 이익을 내기 힘들 만큼 낮은 분양가를 강요하는 바람에 지난 3년간 주택 사업이 줄줄이 늦어지거나 포기한 사례가 속출했다는 것. 결과적으로 공급 부족으로 집값 폭등을 부추기고 로또 청약을 조장하는 부작용만 낳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 “HUG가 주택 건설 의욕 꺾었다”

건설회사나 부동산 디벨로퍼라면 당연히 이윤을 남기기 위해 집을 짓는다. 그러나 많은 건설사들이 HUG의 분양가 통제로 인해 주택 사업 의지가 꺾였다고 말한다. 한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사업 진행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요소는 예상 분양가 밖에 없다. 24평 아파트 1000가구를 짓는데 1평당 분양가 100만원이 깎이면 당장 240억원을 손해본다”며 “HUG가 입지도, 환경도 전혀 다른 아파트 분양가에 맞춰야 한다며 수백만원씩 분양가를 깎아버리는데 누가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겠느냐”고 했다.

[땅집고] HUG 분양가 통제에 따른 중소·중견 주택기업 피해사례. /주택산업연구원


일레븐건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옛 유엔군사령부(유엔사) 부지에 짓는 아파트가 대표적 사례다. 일레븐건설은 2017년 옛 유엔사 땅을 3.3㎡(1평)당 6700만원에 매입했다. 인근 아파트 부지 매입가격(평당 3300만원)의 두 배쯤 됐다. 당연히 고급아파트를 지을려고 했고, 당시 평당 6000만원대에 분양을 계획했다.

그러나 인근에 짓는 고급 아파트 ‘나인원한남’이 HUG 때문에 평당 4750만원대에 분양하는 것을 보고 분양을 포기했다. 평당 분양가가 예상보다 2000만원 낮아진다면 전체 공급면적 10만7784㎡(약 3만3000평)에서 손해만 6600억원에 달한다. 결국 이 부지에서는 3년이 지난 아직도 아파트를 짓지 못하고 있다.

[땅집고] 서울 도심 한복판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용산구 옛 유엔사 부지. /LH 제공


서울에서 이런 현장은 한 두 곳이 아니다. 부동산 디벨로퍼 MDM은 지난해 5월 광진구 한강호텔 부지를 사들여 아파트를 공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8·12부동산 대책에 따른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대상이 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도시형생활주택(전용49㎡·298가구)으로 공급 계획을 변경했다. 그러나 도시형생활주택이라도 50가구 이상인 경우 분양 보증심사를 받도록 한 규정 탓에 HUG로부터 분양가 허락을 받아야 했다. MDM은 아직까지 분양시기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이 회사가 올해 6월 서초구 반포동 KT 부지에 공급하기로 결정한 도시형생활주택 140가구도 같은 이유로 답보 상태다. MDM 관계자는 “민간택지로 분양가 상한제가 확대 적용되며 진행 사업장에서 혼선이 많았고, 상한제 시행 전 HUG의 분양보증을 받아야 하는 문제로 사업 진행에 차질이 컸다”고 말했다.

■ HUG 분양가 통제 3년에 ‘공급량 30% 증발’

서울에서 신규 주택은 대부분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공급된다. 그러나 HUG가 분양가를 걸고 넘어지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 일정이 줄줄이 연기됐다. 재건축 단지가 대표적이다. ▲서초구 신반포 3차·경남 재건축(래미안원베일리)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올림픽파크 에비뉴포레) ▲세운지구 재개발사업 등은 당초 올 상반기 분양할 계획이었지만 HUG 분양가 심사에 발목이 잡혀 내년으로 일정이 미뤄졌다.

[땅집고] 2016~2019년 서울·인천·경기 분양물량. /손희문 기자


HUG의 분양가 통제는 주택 공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HUG가 분양가를 통제한 2016년 7월 이후 최근 3년(2017~2019년) 전국 연 평균 주택 공급량은 10만370가구에 그쳤다. 2016년 14만3924가구가 공급된 것에 비해 공급량이 30% 쪼그라들었다. 올해 서울에서는 예정 공급량(6만6556가구) 대비 42%(2만8100가구)가 분양되는 데 그쳤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일반분양만 6000여 가구에 달하는 둔촌주공만 계획대로 올해 분양했다면 서울 공급량 곡선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땅집고] 올해 지역별 아파트 분양물량. /손희문 기자


주택 업계에서는 아파트 공급 부족과 이에 따른 집값 상승 책임을 HUG에 물어야 한다는 격한 반응도 나온다. 주택 건설업에서 30년 몸담은 건설사 대표 A씨는 “HUG로 인해 사업 인허가나 착공이 수 개월씩 밀리다보니 연초 세웠던 분양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지고, 그런 여파가 쌓여 아파트값 급등으로 나타났다고 본다”며 “분양가를 잡으면 집값이 잡힌다는 환상을 품은 정부와 HUG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 주택도시보증공사(허그·HUG)는?
국토부 산하의 공기업으로 건설사가 아파트를 짓다가 부도가 날 경우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는 분양보증 업무를 ‘독점’하고 있다. 주택 30가구 이상을 선분양할 때는 반드시 HUG 보증을 받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점을 이용해 HUG를 앞세워 아파트 분양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HUG는 사실상 ‘분양 아파트 가격 통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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