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분양보증 독점의 민낯] ③ 분양 사고 속출하는데…'리스크 관리' 내팽개친 HUG
[땅집고] “서울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분양가격이 높아서 미분양 리스크가 크니까 분양보증서 발급을 거절하겠다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발상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정작 분양 사고가 발생한 지방 아파트는 아무런 문제 없이 분양보증서를 끊어주지 않았나.”(국내 대형 건설사 임원)
HUG는 사실상 아파트 분양가를 통제하는 명분으로 ‘보증 리스크(위험) 관리’를 앞세운다. 아파트 분양가를 너무 높게 책정했는데 보증서를 끊어줬다가 건설업체가 분양에 실패하면 고스란히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주택업계에서는 “기본 전제부터 잘못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고분양가 관리지역인 서울 강남권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년간 주택 수요가 넘쳐 미분양을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국내 상위 10대 건설사가 시공하고 있기 때문에 분양가를 높게 책정해 설령 미분양이 나더라도 리스크가 사실상 제로(0)인 지역이다. 분양가 통제가 전혀 필요없다. 정작 분양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지방에서는 HUG가 분양가나 시공사 재무능력 등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보증서를 발급해 분양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HUG가 정부 입맛에 맞는 분양가 통제를 위해 본업인 분양 보증을 핑계로 삼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 리스크 관리한다면서…지방은 묻지마 보증?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HUG가 분양 보증서를 발급한 현장에서 시공사 부도 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현장이 올해 상반기에만 9곳에 달한다. 전국적으로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팔리는 상황인데 오히려 주택 불경기였던 2012년(14건) 이후 가장 많은 분양 사고가 발생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전북 군산시·완주군 ▲울산 울주군 ▲충북 진천군 ▲경남 양산시 등 모두 지방에서만 발생했다. 이 중 광주 광산구만 제외하면 전부 HUG가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하지 않은 곳이다.
이 가운데 5건의 사고가 전부 충남 천안 소재 회사인 지안스건설 파산으로 발생했다. 지안스건설은 1999년 자본금 7억원으로 설립했고 2018년 매출액이 750억원인 중소회사다. 공사를 맡은 아파트는 전부 지역주택조합 사업이었다. 입지가 떨어져 주택 수요가 부족하고, 시행사·시공사 모두 부실한 위험 사업장이었지만, HUG는 분양 보증서를 발급했다.
지안스건설은 2015년 충북 진천군 광혜원지역주택조합사업에서 대량 미분양이 생기면서 공사 대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여파로 올 2월 전북 완주에서 시공하던 2개 아파트 현장이 공정률 35%에서 멈춰섰다. 이어 5월에는 울산 이안 지안스지역주택조합 공동주택 신축 공사 역시 공정률 6% 상태로 중단됐다. 결국 지난 6월 파산과 함께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올 12월 현재 공사가 중단돼 HUG가 관리·경보 단계로 지정한 사업장만 3곳이 더 있다. 예정 대비 공정 부진율이 10%가 넘는 주의 사업장이 12곳, 관찰 사업장은 24곳에 달한다. HUG는 구체적인 사업장 공개는 거부했지만, 올해 수도권·대도시 청약 인기를 고려하면 대부분 지방 현장에서 문제가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가 이하로 분양 강요…10만여가구 사업 중단”
지방에서는 ‘묻지마’ 식으로 분양 보증서를 발급하지만 HUG도 열심히 일하는 지역이 있다. 서울·수도권·광역시·세종시 등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한 곳에서는 3.3㎡당 분양가를 1만원 단위로 깐깐하게 심사한다. 분양가 심사가 늦어져 보증서를 발급받기까지 수개월에서 수 년이 걸리는 현장도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의 경우, HUG로부터 3.3㎡당 4891만원의 분양가를 통보받으면서 한 때 사업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바로 앞 아파트 시세는 3.3㎡당 1억원대이다. 재건축 조합 측은 “반값에 불과한 분양가로는 토지비와 공사비 등 원가도 안 되는 탓에 도저히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사업이 지체되는 동안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게 되면서 오히려 기사회생했다. 토지비 평당 4200만원과 공사비를 포함한 평당 5200만~5400만원에 일반분양할 전망이다.
HUG의 분양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지역이 어디인지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HUG가 분양가 통제를 시작한 2017년 이후 서울·수도권·광역시 아파트는 분양 후 6개월 내 94%가 계약됐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계약률은 86.4%, 기타 지방 초기 계약률은 69.7%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HUG가 ‘고분양가 관리 지역’을 중심으로 과도하게 분양가를 통제하면서 이 지역의 아파트 품귀 현상을 만들고, 이는 아파트 가격을 상승시키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HUG는 서울과 인접 지역에서는 분양가를 인근 시세보다 30% 이상 인하하도록 강제하고 있는데 이는 사업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라며 “결국 사업 추진이나 분양을 미루고 있는 물량이 수도권에서만 10만 가구가 넘는다”고 말했다.
중견 건설업체 대표 A씨는 “지방 소규모 시행업자의 경우 사업 추진을 위해 사채를 끌어쓰는 등 무리하게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 부도 위험이 크다. 정상적인 보증 기관이라면 지방 사업장의 분양 리스크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며 “고분양가 관리지역을 중심으로 한 분양가 심사는 HUG가 정부 하수인으로 현실과 맞지 않는 분양가 통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장귀용 땅집고 기자 jim332@chosun.com
☞주택도시보증공사(허그·HUG)는
국토부 산하의 공기업으로 건설사가 아파트를 짓다가 부도가 날 경우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는 분양보증 업무를 ‘독점’하고 있다. 주택 30가구 이상을 선분양할 때는 반드시 HUG 보증을 받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 점을 이용해 HUG를 앞세워 아파트 분양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HUG는 사실상 ‘분양 아파트 가격 통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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