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재개발도 절대 불가…도시재생 덫에 걸린 동네의 울분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0.12.24 04:47

[악몽이 된 도시재생] ② "한번 지정되면 해제 불가" 올가미가 된 도시재생사업

[땅집고] 지난해 서울시가 도시재생 모범 사례로 꼽은 관악구 난곡동. 동네에 더 이상 이사오는 사람이 없어 부동산 중개사사무소가 문을 닫았다. 외벽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금이 죽죽 간 건물 주변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다. /전현희 기자


[땅집고] “이름만 번지르르한 도시재생사업으로 동네를 망칠 거면, 차라리 (도시재생사업 대상지에서) 해제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구청에선 이미 예산이 집행됐으니 안 된다는 겁니다. 주민들이 직접 정비업체를 통해 구역해제 기본계획안을 준비해 오면 검토는 해보겠다는데, 알아보니 용역비만 5억원이 필요하답니다. 우리 같은 동네에서 그 엄청난 돈을 어디서 구하나요? 협박이나 다름없지….” (이준형 종로구 숭인동 공공재개발 추진위원장)

서울시내 도시재생 사업지 곳곳에서 구역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와 일선 구청들은 “한번 지정되면 해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내 도시재생사업지 대부분은 한두 차례 형식적인 공청회를 한 뒤 서울시가 임의로 지정했다. 지금까지 사업이라곤 노후 주택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거나, 주민들이 찾지도 않는 박물관 같은 건물을 짓는 데 동네마다 수십 억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씩 세금을 쏟아부은 게 전부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당시 SH공사 사장이었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이 사업을 주도했다.

[땅집고] 서울 관악구 난곡동의 골목길. 성인 두 명이 함께 지나가기에도 비좁다. 담벼락에는 빛 바랜 벽화만 남아 있다. /전현희 기자


■도시재생지역은 공공재개발 신청도 할 수 없어

이렇게 진행된 도시재생 사업이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주민들은 “주거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계속 악화되고 있어 도저히 이 동네에 살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서울시가 ‘도시재생 우수 사례’로 꼽은 관악구 난곡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도시재생사업 결과물은 낡은 담벼락에 남아있는 빛 바랜 벽화뿐이다. 어린이 놀이터 옆에 ‘도시재생 게시판’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는 광고 전단지만 덕지덕지 붙어 있다. 서울시는 이곳에 사업비 총 196억원을 투입했다. 서울시가 지정한 도시재생사업지 중 주거지가 포함된 27개 지역 상황이 난곡과 비슷하다.

주거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구역 지정을 해제해 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하고 있다. 또 일부 도시재생 지역 주민들은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올해 하반기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재개발’ 사업 후보지 공모에 신청했다. 공공재개발이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기업이 시행자로 참여하는 정비사업이다. 약 70곳이 사업후보지에 신청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하지만 서울시와 산하 구청은 도시재생구역으로 지정된 지역들은 공공재개발 사업지로 신청할 수 없다며 서류 접수조차 거부했다. 도시재생 지역 중에선 구로구 가리봉동5구역(주민 동의율 30%), 용산구 서계동(24%), 종로구 창신동(31%), 종로구 숭인동(53%) 등이 동의서를 받아 공공재개발 사업 신청을 했으나 서울시와 구청은 이들 지역의 신청서 접수를 모두 거절했다.

[땅집고] 공공재개발 혜택 및 요건. /이지은 기자


김형신 구로구 가리봉5구역 공공재개발 추진위원장은 “나라에서 재개발 도와준다고 해서 열흘 만에 주민동의율을 30%나 받아서 신청했다. 그런데 접수하고 돌아서자마자 구청에서 ‘가리봉5구역은 도시재생구역이라 공공재개발 접수하면 안되니 서류를 도로 가져가라’며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집, 우리 땅인데 별 효과도 없는 도시재생 때문에 개발도 마음대로 못한다니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도시재생지역 한번 지정되면 해제 불가”

서울시 관계자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이미 도시재생 사업으로 예산이 집행된 동네가 다시 공공재개발 사업 지역으로 지정되면 예산을 중복 집행하게 되고 정책 일관성도 떨어져 접수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서울시의 이 같은 주장에 반발한다. 도시재생 지역 주민들은 “주민들이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서울시 마음대로 도시재생 구역을 지정하고 세금을 허공에 날려 먹고는 이제와서 예산 중복 집행이라는게 말이 되느냐”고 항변한다.

[땅집고] 서울시 도시재생과 관계자에 따르면 한 번 도시재생구역으로 묶인 지역은 구역해제가 불가능하다. /땅집고 유튜브 캡쳐


그럼에도 서울시는 방침을 바꿀 계획은 없다. 이주연 서울시 도시재생과 주무관은 “일단 구역 지정돼 예산이 배정·투입된 후라면, 구역 해제는 어렵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도시재생이라는 게 동네 변화를 천천히 불러오는 사업이기도 하고, 정책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은 사실상 세금만 쏟아 부은 실패작이지만,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박원순 전 시장은 권력형 성추행 사건에 연루돼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변창흠 사장은 국토부 장관 후보자에 내정됐다. 변 내정자는 23일 장관 인사 청문회에 나와 “벽화 그리기가 아닌 주민들의 실질적 삶의 질을 높일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도시재생사업으로 망쳐 놓은 동네에 대해 사과는 하지 않았다.

도시재생 지역 주민들은 서울시 방침에 ‘도시재생 구역해제 연대’를 결성하고 주민들의 서명을 받으며 조직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주민들은 일단 도시재생구역이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나야 낙후된 동네를 바꿀 수 있다고 판단한다. 구로구 가리봉5구역·구로1구역, 용산구 서계동, 은평구 수색14구역, 종로구 창신·숭인동 총 6개 구역이 소속돼 있다. 강대선 창신동 공공재개발 추진위원장은 “창신동과 숭인동은 지난달 30일 서울시에 행정심판도 냈다. 만약 기각될 경우 행정소송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박기홍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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