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전국 새 아파트 분양가를 주무르고 있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내부 분양가 심의기준을 무시한 채 특정업체에 3.3㎡(1평)당 325만원, 가구당 약 1억원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도록 허용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HUG는 외부에 누출될 경우 민원 등이 우려된다면서 고분양가 심사 기준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기준이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HUG가 분양 보증을 독점할 경우 심각한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지적하면서 분양 보증 시장 개방을 주장했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15일 감사원에 따르면 HUG는 작년 9월 대전 유성구 봉산동 ‘대전 유성 대광로제비앙’ 아파트에 대한 분양보증 심사 과정에서 내부 규정을 무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HUG 내부 기준대로라면 이 아파트 분양가는 3.3㎡(1평)당 725만원으로 책정돼야 하는데, 이보다 45% 정도 높은 평당 1050만원에 분양 보증을 내줬다는 것이다.
HUG는 새 아파트 분양보증 심사 과정에서 ‘고분양가 심사규정 시행세칙’에 따라 단지 주변 아파트를 비교 사업장으로 삼아 그 분양가를 기준으로 분양보증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비교 사업장 선정 기준은 ▲입지(생활권 등이 유사한 경우) ▲단지규모(300가구 이하·300가구 초과~1000가구 이하·1000가구 초과로 구분) ▲브랜드(시공사의 시공능력평가액순위, 1~30위·31~100위·101위 이상으로 구분하되 컨소시움의 경우에는 순위가 높은 업체가 기준) 등 3가지 중 2개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비교 사업장은 1km 내에서 선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비교 사업장이 선정되면 ▲1년 이내 분양사업장 ▲1년 초과 분양사업장 ▲10년 이내 준공사업장 등의 순서로 분양가 비교 대상 단지를 선정한다. 반경 1km 이내에 마땅한 비교 사업장이 없으면1km씩 범위를 확장해 같은 방식으로 비교 사업장을 고른다.
이 원칙대로라면 지난해 9월 10일 1순위 청약을 받은 ‘대전 유성 대광로제비앙(2022년 3월 입주, 816가구)’의 비교 사업장은 0.2㎞ 거리에 있는 ‘하늘바람휴먼시아(2009년 입주, 990가구)’여야 한다. 3가지 요건 중 두 가지 조건(입지·단지규모)을 충족하면서, 반경 2㎞ 범위에 분양한 지 1년이 넘은 아파트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입주 10년차를 못 채운 ‘하늘바람휴먼시아’가 1순위 비교 사업지로 꼽힌 것.
하지만 HUG는 이 규정을 무시하고 사업장에서 5.6㎞ 떨어진 ‘대전 문지지구 효성해링턴플레이스(2017년 5월 입주, 1142가구)’를 비교 사업지로 선정했다. ‘하늘바람휴먼시아’가 입주 10년을 채워 비교 사업지에서 제외되기까지 40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 때문에 당초 평당 725만원이어야 했던 ‘대전 유성 대광로제비앙’의 분양가는 평당 1050만원으로 결정됐다. 2016년 8월~2019년 말까지 HUG가 보증서를 발급한 156개 고분양가 사업장과 비교사업장 200곳의 평균 거리는 1.27㎞에 불과했고 최대 5㎞를 넘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감사결과, 당시 분양보증심사 과정에 참여했던 A직원은 시행사인 ㈜디케이플러스로부터 ‘LH사업장(하늘바람휴먼시아)을 비교 대상에서 제외해 평당 1050만원 수준으로 책정하되, 분양 일정을 고려해 빨리 분양보증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LH아파트를 비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예외 규정이 없기 때문에 HUG 임의로 기준을 확대 적용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감사원은 HUG가 고른 아파트는 비교사업지 선정 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대전 유성 대광로제비앙’은 총 816가구로 시공능력평가 65위인 대광건설이 시공했다. HUG가 선정한 ‘대전 문지지구 효성해링턴플레이스’는 총 1142가구이며 시공능력평가액 22위인 효성건설이 시공해 단지 규모와 브랜드 두 가지 요건이 맞지 않았다.
감사원은 HUG가 제멋대로 비교사업장을 선정해 ㈜디케이플러스가 PF대출 1개월 이자(1억2000만원), 인건비(1900만원) 등에서 이득을 봤다고 계산했다. 뿐만 아니라 분양가를 높게 책정해 거둬들인 이익도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HUG 측은 분양가 산정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실이 입주민 피해로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HUG 관계자는 “이번 일로 시행사나 시공사 등 관련 기업이 금전적 이득을 봤다고 해서 수익환수처분을 내리는 등의 규정은 딱히 없다”고 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최근 열린 ‘주택사업공제조합 설립방안’ 공청회에서 “HUG가 확실한 법적 근거도 없이 ‘분양가가 높다’며 분양보증을 거절하거나 사업비도 못 챙길 만큼 분양가를 낮게 조정하는 바람에 수도권에서만 10만 가구 이상이 사업추진이나 분양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사실상 분양보증을 독점하면서 수수료 폭리를 취해 결과적으로 무주택 서민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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