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33㎡ 월세 4300만원…손님 끊긴 지하상가 '피눈물 폐업'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0.12.11 04:05
[땅집고]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안 셔터가 내려진 점포에 '상가 입찰 준비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지은 기자


[땅집고] 지난 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 개찰구를 나오자마자 철제 셔터가 내려져 있는 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굳게 닫힌 점포마다 ‘상가 입찰 준비중입니다, 고객 편익증진을 위해 빠른 시일 내 상가 입점을 추진하겠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역사 내 7개 점포 중 영업 중인 곳은 화장품 가게 한 곳뿐이었다. 2~3년 전만 해도 이화여대 등 근처 대학생과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았지만, 이날은 매장을 찾는 고객이 한 명도 없었다.

2호선과 4호선 환승역인 사당역도 마찬가지였다. 대합실에서 3·4번 출구 쪽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배치된 점포 14곳이 전부 폐업했다. ‘만쥬하나’, ‘와플반트’, ‘빈티지몰’ 등 간판만 덩그러니 달려 있었다. 박모(29)씨는 “체감상 (사당역 역사 내 상가들이) 이렇게 된 지 두세 달은 넘은 것 같다”고 했다.

[땅집고] 서울 사당역 3~4번 출구쪽 통로에 있던 상가 14곳은 전부 문을 닫았다. /이지은 기자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촉발된 경기 침체와 온라인 쇼핑 활성화 여파로 서울교통공사가 소유·임대하는 지하철 역사 내 상가들이 줄줄이 폐업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 1~9월 지하철 1~8호선 역사 내 상가 총 1676곳 중 228곳이 폐업해, 지난해 같은 기간(81곳)보다 2.8배 많은 점포가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공실률을 봐도 ▲2018년 17.4% ▲2019년 12.3% 에 이어 올해 9월 기준 공실률은 31.9% 에 달해 최근 3년 중 올해가 가장 심각했다. 서울 지하철 점포 3곳 중 1곳 꼴로 빈 셈이다.

■ 이용객 점점 감소…임대료는 여전히 비싸

지하철 상가가 줄폐업한 이유는 뭘까.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마다 재택근무를 실시하면서 지하철 이용객이 대폭 감소한 데다가, 운행시간까지 단축하면서 수요 자체가 급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교통공사는 올해 1~9월 지하철 1~8호선 이용객 수가 약 9억660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억2500만명) 대비 27% 감소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전자 상거래 발달로 지하철 이용객들이 소매업종 위주인 역사 내 상가를 잘 이용하지 않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땅집고] 사당역 내 점포별 임대료.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


지하철 상가 임대료는 임차를 원하는 후보자들이 경쟁 입찰로 결정하고, 기본 계약기간이 5년이다. 이 때문에 현재 임차인 대부분이 과거 경기가 좋았던 시절에 계약한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지하철 역사 내 상가 임대료는 국내 최고 상권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2호선 신촌역 내 상가 중 33㎡(약 10평) 규모 화장품 가게는 월세가 4316만원으로, 3.3㎡(1평당) 400만원에 달한다. 현재 온라인 부동산 중개 사이트에 강남역 출구 바로 앞에 있는 ‘글라스타워’ 1층 42.58㎡ 상가가 보증금 2억원에 월세 4000만원에 나와 있는 것과 맞먹는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노른자 상가도 월세가 평당 100만원이면 상당히 비싼 것”이라며 “지하철 상가 월세는 강남역 일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2호선 신도림역 편의점(25㎡) 1321만원 ▲4호선 사당역 의류매장(29.4㎡) 693만원 ▲5호선 광화문역 편의점(41.7㎡) 2534만원 등 주요 지하철역의 경우 월세 1000만~2000만원이 넘는 상가가 많다.

지하철역 상가는 공실이 발생하면 다시 경쟁입찰 방식으로 새 임차인을 모집한다. 문제는 규정상 최저 입찰가를 낮추고 싶어도 연속 4차례 유찰된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 이 때문에 공실 해소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올해 폐업한 지하철 상가가 228곳인데 재임차된 상가가 단 13곳에 불과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임대료 절반 깎아줘도 대부분 못 버텨”

[땅집고] 서울 지하철 역사 내 상가 공실률 추이. /이지은 기자


서울시가 지난 9월부터 연말까지 넉달간 지하철역 상가 임대료를 50% 감면해 주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못 버티고 떠난 세입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임대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한 경우 잠재적 폐업군으로 분류하는데, 올 9월 기준 전체 25% 정도가 1개월 이상 임대료를 체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 5년 임대차계약 기간 중 최소 영업기간(개별상가 12월·복합상가 18개월)을 못 채우면 남은 기간 임대료를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

구종성 서울교통공사 과장은 “2호선 이대역 02호 점포의 경우 2021년 7월까지 계약됐는데 장사가 워낙 안돼 인건비도 안 나온다며 문을 닫았다. 맞은편 08호 점포는 내년 5월 계약 만료인데 지난 6월 중도 해지했다”면서 “임대료를 깎아줘도 소비 심리가 워낙 위축된 터라 상인들이 버티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지하철역 상가 1676곳 중 공실은 534곳. 서울시가 공실로 입은 임대료 손실액만 57억9600만원에 달한다. 2018년(23억원)과 2019년(20억원) 2년치 손실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 권강수 대표는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지하철역 상권을 되살리려면 임대료를 더 파격적으로 깎아주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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