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오피스텔에 월세로 거주 중인 C(26)씨. 그는 오는 14일부터 접수를 시작하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 일대 양원지구 S1블록 국민임대주택(전용 33~37㎡, 192가구) 공고를 살펴보다가 분통을 터뜨렸다. 이곳에 입주 신청하려면 ‘도시근로자 월평균 가구소득의 50%’보다 소득이 낮아야 하는데, 1인 가구인 C씨의 경우 이 소득 기준이 월 132만원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 월 소득인 179만5310원으로도 맞출 수 없는 것. C씨는 “일반 직장인은 신청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가 무주택 서민을 위해 공급하는 국민임대주택의 현실성 없는 소득 기준에 대한 비판이 줄을 잇는다. 공고에 제시된 소득기준인 도시근로자 소득이 너무 낮아 일반적인 근로자는 입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소득을 충족하는 경우 현실적으로 가구당 2000만~3200만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마련하기도 사실상 어렵다. 또 입주 후 소득이 늘어나면 강제 퇴거할 수밖에 없다. ‘부모 돈을 지원받은 무직자가 입주해 계속 일을 하지 않아야만 살 수 있는 주택이 정상적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임대주택은 무주택 저소득층 중심으로 저렴한 임대료로 주택을 임대하기 위해 국민주택기금으로 조성한 주택이다. 신청세대(무주택세대구성원 전원)의 월평균 소득 합계가 전년도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의 50% 이하인 신청자에게 우선 공급한다. 남은 주택이 있으면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원수별 가구당 월평균소득의 50% 초과, 70% 이하인 세대에게 돌아간다.
문제는 도시근로자 가구원수별로 매겨진 소득기준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것이다. 국민임대주택 신청기준인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50%는 ▲1인 가구 약 132만원 ▲2인 가구 약 218만원 ▲3인 가구 약 281만원 ▲4인 가구 약 311만원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월 179만5310원으로 최저임금보다 약 30% 낮은 소득이어야 국민임대주택 신청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정부도 이를 감안해 오는 13일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내년 1월부터 소득기준을 현재보다 1인 가구는 20%포인트, 2인 가구는 10%포인트 올리기로 했지만 여전히 최저임금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소득기준을 통과해도 신청자에겐 보증금이 또 다른 문턱으로 작용한다. 전용 33㎡는 보증금 2100만원, 전용 37㎡는 3186만원이 필요하다. 국민임대주택 신청에 필요한 소득자격을 갖춘 사람이 저축을 하려면 최저생계비 이하의 지출을 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발표한 올해 비혼 단신 최저생계비는 175만2898원이다.
2년마다 돌아오는 갱신 계약에서 소득기준 초과액에 따라 임대료가 할증될 수도 있다. 특히 소득 기준을 50% 넘게 초과하면 임대료가 140%로 올라 단 1회만 재계약할 수 있고 이후엔 퇴거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국민임대주택이 정작 주거 보호가 필요한 저소득 무주택자에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불만이 나온다. 가족 수가 많으면 소득 기준이 올라가지만 전용 33㎡(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자녀까지 키우기도 어렵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고시원에 거주하는 K씨(29)는 “소득 기준을 맞추려면 1인 가구는 영원히 저소득자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냐”고 했다.
국민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이번 양원지구 국민임대의 경우 소득기준 완화 이전에 공급되는 곳이어서 소득기준이 많이 낮다”면서 “내년부터 시행되는 완화된 소득기준에 대해서도 민원이 많은 만큼 다각도로 방안을 강구해 보겠다”고 했다. 또 “보증금 부담도 개선 방안을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임대주택 소득수준을 비현실적으로 낮춘다고 취약계층의 주거 환경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신청 범위는 늘리고 보유 자산 규모나 주거 안정 필요성 등을 세심하게 심사해 입주자를 고르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주택은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영원히 임대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순환이 필요하다. 소득기준을 대폭 완화하거나 아예 소득기준을 없애는 것이 옳다고 본다”면서 “지나치게 설정된 조건으로 정작 주거안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신청조차 못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귀용 땅집고 기자 jim33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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