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현일의 미국&부동산] 24시간 도시 지고, 18시간 도시 뜬다
“우리는 지금 유니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최근에 열린 내년 부동산 트렌드를 논하는 한 온라인 부동산 컨퍼런스에서 한 패널이 한 말이다. “많은 것이 변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과 다르고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2021년이 벌써 코앞이다. 이제 2달 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3월 이후 재택근무로 8개월을 집에서 지내다 보니 어쩌다 연말이다. 집에 있는 동안 시장은 여러 번 요동쳤고, 많은 것이 변했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내년은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까. 어떤 마켓에 투자해야 할까. 어떤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까. 2021년을 전망하는 몇몇 리포트와 시장 관련 기사를 보며, 키워드를 정리해 봤다. 18시간 도시, 교외 지역, 선벨트, 리테일 변혁, 대통령 선거 등이다.
■덜 붐비고, 덜 비싼 도시로 이주
매년 이맘때 PWC와 ULI(Urban Land Institute)에서 공동으로 내년 부동산 시장을 예측하며 내놓는 보고서가 있다. 바로 ‘부동산 이머징 트렌드 리포트’다. 이 리포트에서 부동산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보는 부분은 부동산 투자를 위해 눈여겨봐야 할 시장(Markets to Watch)이다. 랠리/더럼, 어스틴, 내쉬빌, 달라스/포트워스가 1위부터 4위로 꼽혔다. 이런 도시를 선정하며 떠오른 키워드가 ‘18시간 도시’(18 hour cities)다. 상위를 차지한 대부분의 도시가 이 18시간 도시에 포함된다.
우선 개념 정리부터 하자. 24시간 도시는 익숙하다. LA, 시카고, 뉴욕, 워싱턴 D.C처럼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인구도 많고 뭐든지 비싼 도시다. 이에 반해 18시간 도시는 그보다는 덜 붐비고, 덜 비싼 도시들을 말한다. 인베스토피디아(Investopedia) 정의에 따르면 중형 사이즈 도시로, 매력적인 편의시설, 평균보다 높은 인구 증가율, 대도시보다 낮은 생활비가 드는 도시를 말한다. 최근 팬더믹으로 대도심을 떠나 교외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면서 18시간 도시들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번 리포트의 한 저자는 ‘미국인의 대이동’(the Great American Move)이라는 표현을 썼다.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 ‘선벨트’(Sunbelt) 시장의 교외 도시로 이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슈퍼 선벨트와 선샤인 스테이트
여기서 다시 키워드 하나. 바로 선벨트다. 팬더믹으로 인해 선벨트 시장이 더욱 각광받고 있다. 선벨트는 태양이 비치는 지대라는 뜻이다. 따뜻한 북위 37도 아래의 지역을 총칭한다.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 15개 주가 들어간다. 하지만 모두 시장 전망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중 슈퍼 선벨트가 있다. 달라스/포트워스, 휴스턴, 애틀란타, 피닉스, 샌안토니오, 탬파가 여기 속한다. 여전히 사업을 하거나 집을 사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경제가 좋아 회사들이 몰리는 지역이다. 슈퍼 선벨트가 2019년에서 2025년 사이 미국 신규 일자리의 28%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와 함께 선샤인 주(Sunshine State)에 속한 도시들도 크고 있다. 사우스 플로리다에 속한 마이애미, 잭슨빌, 포트 로더데일 등이다. 이 지역은 일자리 성장이 미국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내년에도 밀레니얼들에게 매력적인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교외 도시들은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팬더믹으로 건강과 안전이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면서, 사람들이 인구 밀집도가 높은 대도심을 기피하고 있다. 특히 대도시의 관광 침체와 비즈니스 세수 감소로 인한 세금 부담 가중, 재택근무 증가가 이런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밀레니얼들의 이동은 교외 도시들의 변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도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힙스터비아 등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또한 대도시들도 교외 지역 느낌을 더하기 위해 공원이나 오픈 스페이스를 늘리려는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인종 차별 해소 노력
이외에 올해 큰 사회적 이슈였던 인종 차별도 부동산의 중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ULI의 설문에서 70%의 응답자들은 부동산 산업이 다양성 존중, 낙후 지역의 개발 등을 통해 시스템적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답했다. 슬램화된 낙후 지역의 부동산 개발에 의도적으로 투자하는 공공 목적의 펀드가 늘어나는 이유다.
또한 모두가 예상하듯 리테일 산업은 변혁을 맞을 것이다. 여전히 세력을 과시하고 있는 팬더믹 아래, 리테일은 그야말로 죽어 나가고 있다. 유명 브랜드들이 부도가 났고, 폐점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 소매점과 백화점은 점점 쇠퇴하고, 할인점이나 패스트 패션, 온라인몰이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오프라인 매장은 점점 규모가 줄어들고, 낮은 임대료의 많은 공실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항상 위기는 기회다. 유명 브랜드들이 낮은 가격에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도 있고, 대형 쇼핑몰의 빈 상가 공간이 온라인 쇼핑몰의 배송센터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큰 변화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대선 결과 예의주시
11월에는 대선도 있다. 새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따라 크고 작은 영향이 미칠 것이다. 부동산 관련 세금 정책, 기회 지역(Opportunity zones), 공정 주택(fair housing), 해외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반중국 행보 등이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대통령 선거는 주택 가치에 영향을 미쳤다. 캘리포니아 부동산 시장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통 선거가 있는 해는 전년 대비 주택 가격이 1.5% 덜 올랐다. 선거 다음 해에도 0.8% 상승세가 낮아졌다. 하지만 올해는 다를 수 있다. 코로나 팬더믹이 다른 변인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을 잃어버린 한 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2021년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백신 개발로 한 번에 없어지고, 코로나 전으로 모든 것이 되돌아가길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다. 2021년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장밋빛 필터를 거둬내고, 내년을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