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은마도 가구당 11억 손해…"공공재건축, 그걸 왜 해?"

뉴스 김리영 기자
입력 2020.10.15 04:07

[땅집고] “결국 정부 계획대로 하면 대지 지분을 절반씩이나 정부에 헌납하고 강남 한복판에 닭장 같은 아파트를 만들게 되겠지요. 여긴 1대1 재건축 이야기가 나올 만큼 사업성이 높은 곳인데, 그런 사업을 할 이유가 없지요.”

[땅집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 조선DB


지난 달 30일까지 정부는 서울권 재건축 사업지를 대상으로 지난 7·10대책에서 발표한 공공재건축 사업 사전 컨설팅 의뢰를 받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사전 컨설팅에 참여한 단지는 총 15곳이다. 이중 강남 핵심 사업지로 꼽히는 은마아파트가 포함된 것이 알려지면서 내부 주민들 사이에 큰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정돈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장은 “사전 컨설팅을 의뢰한 것일 뿐 공공재건축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서둘러 수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항의는 계속되고 있다.

공공재건축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은 은마아파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공재건축은 현재 기존 재건축 제도로는 진행이 어려운 단지들에 용적률을 완화해 재건축을 지원하겠다며 정부가 발표한 대책이다. 하지만 대규모 재건축 사업 대상지로 꼽히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노원구 상계주공 단지 주민들은 정부의 공공재건축 개발안을 검토하고서는 이제는 ‘버리는 카드’로 취급하고 있다. 정부는 올 연말까지 공공재건축 선도사업지를 선정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참여하겠다는 곳은 나오지 않았다.

■ 은마 공공재건축하면…가구당 11억원씩 기부하는 셈

[땅집고] 정부가 발표한 공공 재건축 시뮬레이션. / 국토교통부


[땅집고]정부의 시뮬레이션 전체 가구수 중 각 분양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 / 땅집고


재건축 대상 주민들이 공공재건축에 반대하는 첫번째 이유는 기부채납 비율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임대가구가 증가한 만큼 일반분양 가구 수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충분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가구 수가 아니라, 전체 용적률에서 임대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재건축 단지의 용적률이 재건축 상한선(250%)에 가깝게 높을 수록 임대가구 증가폭은 일반분양 가구 증가폭보다 더 커진다.

[땅집고]은마아파트가 공공재건축을 진행할 경우 기부채납 및 일반분양 면적 비중 변화. (기존 법정상한 용적률(250%)에 50%를 더 완화받아 총 300%를 적용받고 늘어난 용적률 중 절반을 기부채납할 경우와 비교.)/ 땅집고,


은마아파트의 용적률은 204%. 만약 용적률을 300% 정도를 받아 재건축을 진행할 경우 임대가구가 전체의 8.4% 정도를 차지하지만, 공공재건축을 하면 임대가구가 전체 가구의 25%로 17%포인트 늘어난다. 물론 일반분양 가구가 증가하긴 하지만 임대가구 증가폭보단 약 6%포인트 작다.

은마아파트 소유자 모임 중 하나인 은마반상회 관계자는 “소유자들이 자체 시뮬레이션한 결과 정부가 제안한 공공재건축을 하게 되면 소유자의 대지지분 손실이 막대하고 추가분담금도 더 나온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소유자 협의회는 “은마 전용 84㎡(34평)의 대지지분이 평균 15.28평인데 공공재건축을 통해 같은 크기를 분양받으면 대지지분이 7.9평으로 줄고, 기부채납으로 인해 지분손실액이 총 11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땅집고] 은마아파트 재건축 용적률 시뮬레이션 및 가구수 변화. / 은마아파트 소유자 협의회


■ “기존 주택을 넓힐 수가 없어요”…믿었던 상계주공마저 공공재건축은 ‘반대’

정부의 방안에 잠시 관심을 보였던 강북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도 지금은 시큰둥해졌다. 용적률이 평균 170~200%대에 달하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 단지 주민들도 공공 방식으론 재건축이 불가능하단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변흥섭 상계주공6단지 재건축 예비 추진위 대표는 “공공재건축은 사업비가 종전과 같은데, 기부채납(임대) 비중만 늘어나는 꼴로 고스란히 주민들의 건축비 부담으로 되돌아온다”고 말했다.

상계주공 아파트는 주택형이 대부분 37~60㎡ 정도로 면적이 작다. 기존 방식으로는 일반분양 물량이 너무 작아 재건축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준주거지역으로 용적률(400%)을 크게 상향하고자 한다. 재건축을 통해 면적을 2배 이상 넓히려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용적률로 집을 넓히는 것이 불가능하다. 가장 좋은 방안은 현재 용적률의 2배인 약 400%대의 용적률 혜택을 받고, 여기서 25%포인트에 해당하는 면적을 기부채납하는 방법이다.

[땅집고]상계주공6단지가 공공재건축을 진행할 경우 기부채납 및 일반분양 면적 비중 변화. (준주거지역으로 상향해 용적률을 총 400%로 높이고 이중 300%에 해당하는 면적을 조합원이 사용하고, 나머지 남은 면적 중 25%포인트를 기부채납할 경우와 비교.)/ 땅집고, 상계주공6단지 예비추진위


공공재건축을 진행하면 기존의 용적률보다 훨씬 큰 500%대의 용적률 적용 받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업성은 줄어든다는 것이 해당 단지의 결론이다. 주민들의 계산에 따르면 공공재건축을 진행해 용적률이 500%로 늘어나면 이 중 50%는 조합원의 기존 주택을 확장하는 용도로 사용할 계획이다. 이후 남은 용적률을 활용해 공공재건축을 진행하며 임대 가구는 기존 재건축 방식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6%→25%)하지만, 오히려 일반 분양이 19%에서 10%로 줄어든다. 조합원 입장에선 일반 분양을 많이 해야 분양 대금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데, 공공재건축으로 사업을 진행하면 일반분양이 크게 줄어 사업성이 더 낮아질 수도 있는 셈이다.

■ 왜 재건축만 엄격?…분양가 상한제·초과이익환수제 그대로 적용

공공재건축은 공공재개발과 달리 규제가 더 엄격해 추진이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공공재개발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한 분양가 상한제, 기존 재건축 규제 사항에 속하는 초과이익환수제·2년 거주의무가 공공재건축에는 모두 적용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재건축보다는 재개발 지역들이 상대적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고, 공익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 많다고 여겨 재개발에 조금 더 인센티브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땅집고]정부의 재건축 제도에 반발한 여의도 시범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항의를 벌이고 있다. /조선DB


현 정부는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3년 간 주장하다가 집값이 기록적으로 폭등하자 돌연 입장을 바꿔 내놓은 공급 확대방안이 공공재건축 안이었다. 하지만 재건축 단지들이 정부 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공급 확대를 통한 서울 집값 안정화 대책도 실패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사업 초기 단계인 전체 재건축 조합 중 20% 정도는 공공재건축에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현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정부도 난감한 상황이다. 김태웅 국토교통부 주택정비과 사무관은 “재건축 단지 중 20%가 참여할 것이라는 예상치는 올 연말 기준이 아니라, 공급대책의 시행기간인 2028년까지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대책이 정부 계획처럼 실현되다고 하더라도 7~8년 뒤의 얘기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 셈이다./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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