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 역삼푸르지오시티. 지난 6일 기준으로 부동산 포털사이트에 333실 규모인 오피스텔에 총 매물 48건 중 매매 건은 27건, 월세 매물은 18건, 단기 임대 매물은 3건이 등록돼 있었다. 그러나 전세 매물은 0건이었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월에 2건 정도 꾸준하게 전세 거래가 이뤄졌지만 9월부터는 전세 거래가 뚝 끊겼다. 이 오피스텔은 2호선 역삼역에서 200m 거리로 강남 업무지구로 출퇴근하는 20~30대 젊은 층들이 주로 찾는다.
이 오피스텔의 경우 매매 금액과 전세금이 거의 차이가 없고, 경우에 따라 전세금이 매매금액보다 비싸기도 하다. 전용 23㎡ 크기 오피스텔의 경우 최근 실거래 가격이 2억5000만~2억7000만원 선이다. 정우공인중개사무소 소장 김영희씨는 “한 달쯤 전부터 오피스텔 전세가 워낙 귀해 집주인이 전용 23㎡ 금액을 2억5000만원까지 높여 부르는데도 나오면 2~3일 안에 바로 거래된다”고 말했다.
■“임대차 3법의 칼날, 무주택 1인 가구·사회초년생 위협”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 붙여 만들어낸 ‘임대차 3법’의 칼날이 서울의 오피스텔과 원룸에 세 들어 사는 무주택 1인 가구와 사회초년생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여당은 임대차 3법은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며 이 규제를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임차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대료’가 치솟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차인 입장에서 임대료를 절감할 수 있는 최적의 임대주택인 전세 매물은 시장에서 아예 사라져 품귀 상태가 됐다. 현재 강남 오피스텔 시장에서 가끔 나오는 전세 매물의 경우 기존보다 최소 15% 높은 신고가를 잇달아 경신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에 오피스텔을 보유한 A씨는 2년 전 1억3650만원에 전세 세입자를 구했다. 이때 기존 보증금보다 5% 정도 전세금을 높였다. 지난달 세입자가 이사를 나간 뒤 A씨는 전세 보증금 1억9000만원에 내놓았다. 2년 전 가격에 비해 40% 오른 수준이었지만, 공인중개사무소에 매물을 내놓은지 이틀 만에 전세 세입자를 구했다. A씨는 “임대차보호법 때문에 적어도 4년 간은 가격을 올려받을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전세금을 확 올렸는데, 금세 세입자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전월세 계약갱신 청구권을 포함하는 주택 임대차 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서울 오피스텔 원룸 전세는 급격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 7~8월 서울 전용 30㎡ 기준 오피스텔 거래량은 이 기간 1345 건에서 996건으로 감소했다. 전체 25개 구 중 16개구에서 거래량이 줄었다. 특히 마포(48건 감소)·송파구(34건 감소) 등에서 40% 이상 떨어지며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그 사이 평균 전세금은 전체 25개 구 중 18개에서 상승했다.
다가구·다세대 주택 원룸 전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다가구·다세대 주택 전세 거래량은 지난7월까지 꾸준하게1만 건 이상 유지하다 지난 8월부터 9586건으로 줄어들더니 9월에는 6918건으로 급감했다. 지난 8월 서울 전용 30㎡ 이하 단독 다세대 연립주택 평균 전세보증금은 1억626만원으로 올 1월과 비교해 2296만원(27%) 올랐다. 특히 가격이 저렴해 사회초년생들이 많이 찾던 도봉구는 전달 대비 전세보증금이 2492만원(24.1%) 올라 1억2826만원을 기록했다.
오피스텔이나 원룸은 주로 임대수익을 위해 운영하는 수익형 부동산이다 보니 전세를 내놓는 경우가 원래부터 적은 편이다. 반대로 1·2인 가구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월등히 낮은 주거비용으로 임차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가뜩이나 전세를 구하기 어려운 이 시장에서 임대인 권리를 대폭 제한하는 임대차법이 등장하면서 전세 매물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강남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는 “아무리 전세 매물이 없더라도 역삼동 인근 오피스텔 전세가 15~20개 정도는 시장에 항상 나와있었는데 지금은 5개도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저금리 기조·임대차 3법…월세도 따라 오를 듯
전문가들은 원룸·오피스텔이 구조적으로 일반 주택보다 임대차보호법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원룸·오피스텔은 통상 세입자들이 거주 기간을 1~2년 내외로 짧게 계획한다.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인해 거주 가능한 기간이 4년으로 늘어나더라도, 일반 주택보다 4년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집주인으로서는 신규계약을 할 때 40%까지 최대한 높여 부르더라도 전세가 쉽게 빠진다.
원룸·오피스텔 전세금이 오르면서 매매가격 격차가 좁아지자 갭투자가 다시 고개를 들 조짐도 보인다. 전세금이 올라 매매가와 1000만~2000만원 밖에 차이나지 않는 사례도 많아졌다. 금천구의 한 오피스텔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B씨는 “전세 거래를 하러 왔던 세입자가 전세가율을 보고 매매할 생각이 없냐고 묻는 경우가 다수”라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월세도 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일부 대학가의 경우에는 월세 변동이 크게 없지만 코로나가 진정되고 대학생들이 돌아와 대학가 월셋집을 다시 구하기 시작할 때가 문제다. 심형석 미국 SWCU 교수는 “월세 세입자를 새로 구할 때는 전월세 전환율 규제는 무의미한 것이어서 현재 상황이라면 월세는 앞으로 더 오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춘욱EAR리서치 대표는 “전세금을 레버리지 삼아 갭투자하려는 임대사업자를 규제하고자 임대차3법을 도입했지만 전세가가 오르면서 오히려 정부가 갭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며 “정부가 만든 임대차 3법 때문에 원룸 세입자인 애꿎은 청년들만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고 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