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남 광양시의 한 아파트 44층에서 불이 났다. 집 안이 아닌 공용공간에서 불길이 시작된 탓에 출입구나 계단으로 대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집에서 생후 6개월 아기를 돌보던 A씨는 발코니에 설치된 경량 칸막이를 뚫고 옆집으로 탈출해 위기를 모면했다.
경량 칸막이는 아파트 발코니 등에 약 9㎜ 얇은 석고보드로 설치한 일종의 실내 비상구다. 아파트에서 불이 나면 출입구나 계단으로 대피하기 어려운 경우 이 칸막이를 뚫으면 옆집이나 화재를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출할 수 있다. 발로 차거나 도구를 사용하면 초등학생도 스스로 파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992년 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아파트 3층 이상에는 옆집 발코니로 이어지는 경계벽을 쉽게 허물 수 있도록 경량 칸막이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경량 칸막이 위치를 확인하고 싶다면 발코니에서 옆집과 맞닿은 벽을 두드렸을 때 ‘통통’ 가벼운 소리가 나는 곳을 찾으면 된다. 아파트에 따라 ‘비상탈출구’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는 곳도 있다. 유사시 빠르게 대피하려면 이곳에 세탁기나 수납장을 놓거나 짐을 쌓아두지 않아야 한다.
2005년 이후에는 경량 칸막이 대신 대피공간을 두는 방안이 추가됐다. 특히 옆집과 나란히 붙은 판상형이 아닌 타워형 아파트에서 이 대피 공간을 찾아볼 수 있다. 대피공간은 창고·보일러실과는 별개의 공간으로 화재에 1시간 이상 견딜 수 있는 방화문을 설치해야 하며, 이곳에서 문을 닫고 구조 요청을 하면 된다. 2008년부터는 하향식 피난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아파트에는 ▲경량 칸막이 ▲대피공간 ▲하향식 피난구 가운데 한 가지는 반드시 설치돼 있어야 한다. /최윤정 땅집고 기자 choiyj90@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