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지난 11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지하철 7호선 마들역 4번 출구를 나와 지은 지 30년도 더 지난 복도식 아파트들 사이를 지나 300m쯤 걸어가니, 초등학교를 끼고 높게 솟아오른 신축 아파트가 보였다. 상계주공8단지를 재건축해 올 12월 입주할 ‘포레나 노원’이다. 상계동 일대 주공아파트 가운데 재건축을 추진해 입주까지 앞둔 유일한 곳이다. 기존 5층·880가구에서 최고 30층·1062가구로 바뀐다. 현재 84㎡(이하 전용면적) 분양권 호가가 최고 15억원으로 최초 일반 분양가(6억3000만원) 대비 2.5배 정도 올랐다.
서울 강북의 대표적 중산층·서민 주거 단지로 꼽히는 상계동 일대 재건축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이곳에는 입주 35~40년차인 5~15층 주공아파트 3만여가구가 몰려 있다. 첫 스타트를 끊었던 ‘포레나 노원’이 이른바 ‘대박’을 치면서 인근 아파트 주민들도 재건축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실제 사업 추진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당장 이곳 아파트 용적률이 현재 170~200%로 높은 데다 조합원이 많아 사업성 확보가 쉽지 않다. 정부가 제시한 ‘공공재건축’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기부채납 비율이 높아 섣불리 뛰어들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 5·6단지 속도 가장 빨라…나머지는 안전진단 준비
상계동 일대 주공아파트는 1981년 강남구 개포주공과 1983년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에 이어 1985~1989년 신시가지 사업을 통해 조성됐다. 중산층 주거단지여서 주택형은 32~90㎡로 크지 않고, 5단지와 8단지를 제외하면 모두 15층이다. 모든 단지가 준공 30년이 넘어 재건축 연한을 채웠다.
상계동 주공아파트 가운데 가장 먼저 재건축을 추진했던 곳은 8단지. 8단지는 지상 5층 830가구로 기존 용적률이 88%로 비교적 낮았다. 하지만 용도지역이 2종 일반주거지역이어서 3종으로 종상향을 통해 용적률을 235%까지 높여 받으면서 사업성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8단지 47㎡를 보유한 조합원이 84㎡로 집을 넓힌 경우, 권리가액 평균 2억7000만원에 84㎡ 분양가 5억600만원을 감안하면 1인당 추가 분담금은 2억3000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현재 84㎡는 15억원대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대박을 친 셈이다. 이 아파트에서 1km쯤 떨어진 ‘상계 센트럴 푸르지오(2020년 1월 입주)’ 84㎡ 실거래가 9억4000만원(6월·18층)과 비교해도 5억원 이상 높다.
8단지에 자극받아 다른 단지들도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5단지는 서울시 도시·건축 혁신방안 시범사업대상지로 선정돼 2018년 안전진단을 통과한 데 이어 오는 11월 정비구역지정 고시를 앞두고 있다. 지난 6월에는 6단지가 예비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재건축 첫 관문을 통과했다. 이어 11·14·16단지도 예비안전진단 신청을 위한 준비 중이다. 나머지 1·2·3·4·7·9·10·12단지는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구성 중이다.
■ 5단지 빼면 모두 15층…사업성 의문
문제는 상계동 일대 재건축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 8단지와 5단지를 제외한 나머지 단지는 용적률을 대폭 높이지 않는 한 재건축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 5단지와 8단지는 기존 용적률 100% 이하에 5층으로 낮았기 때문에 서울시 재건축 법적상한 용적률인 250% 이내에서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머지 단지들은 15층으로 높고 기존 용적률이 169~207%에 달한다. 평균 주택형이 32~68㎡로 작은 것도 큰 걸림돌이다. 기존 조합원들이 1대1 재건축을 한다고 해도 일반분양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워 추가 분담금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용적률을 최고 500%까지 높여 주는 공공재건축도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회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기부채납 비율이 너무 높은 것이 문제다. 공공재건축으로 늘어난 용적률(250%포인트)의 절반인 125%는 임대아파트로 정부에 무상 제공해야 한다. 나머지 125%는 일반분양해야 한다. 변흥섭 상계주공6단지 예비추진위원회 대표는 “현재 공공재건축 모델로는 기존 조합원의 주택을 넓히는데 쓸 수 있는 용적률이 50%에 불과하다”면서 “재건축을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집을 넓히는 것인데 이대로는 재건축을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상계주공 6단지는 공공재건축보다 용도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해 용적률을 최대 400% 적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늘어난 용적률 약 200%포인트 중 100%포인트를 기존 주택 소유자의 집을 넓히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일반분양과 임대비율 역시 3대 1로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 사업추진 성공 쉽지 않아…결국 용적률이 관건
현재 상계동 재건축 시장에서 6단지를 주목하는 이유는 입지가 가장 좋기 때문이다. 지하철 노원역(4·7호선)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고 백화점 등 각종 인프라 이용도 편리하다. 따라서 6단지가 사업성이 부족하면 다른 단지는 재건축이 더 어렵다.
상계동 주공아파트 16개 단지 중 공공재건축을 고려하는 단지는 한 곳도 없다. 사업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계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초과이익환수제나 안전진단 규제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용적률”이라며 “용적률을 조금만 높여주면 각 단지 실정에 맞게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상계동 일대 재건축 아파트 종상향 가능성이 높지 않아 사업 추진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본다. 김제경 투미부동산 소장은 “재건축 단지의 집값 상승률이나 추진 속도만 볼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사업 추진이 가능한지 여부를 잘 살펴봐야 한다”며 “서울시내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곳이 드물고 입주까지 변수도 너무 많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