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생애 최초? 생애 최악…사전청약 때문에 10년째 떠돌이"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0.10.01 08:52
[땅집고] 2010년 11월 사전예약(사전청약)을 받은 경기도 하남 감일지구 B4블록. 사전예약일로부터 약 11년 후인 2021년 10월 완공 예정이다. /이지은 기자


[땅집고] 서울 송파구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경기 하남시 감일지구. 이 곳 B4블록(595가구)에선 오는 2021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11월 사전예약(지금의 사전청약)을 받았던 단지인데, 약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공사가 한창이다. 바로 옆 B3블록(578가구)도 마찬가지다.

[땅집고] 하남 감일지구 사전예약 당첨자들이 입주 지연에 대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감일지구 사전예약자 피해대책위원회


당시 이 아파트 사전 예약을 받을 때에는 사전청약 2년여 뒤인 2013년 본청약을 실시하고, 즉시 착공해 2015년 입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토지보상 지연, 문화재 발굴, 인근 지구와 통합 개발 무산 등 문제를 겪으면서 계획보다 5년여 미뤄진 2018년에야 본청약을 진행하게 됐다.

그 사이에 사전 예약자에 당첨된 소비자들은 애가 타들어갔다.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정부 말만 믿고 ‘전세 난민’으로 떠돌았다. 이들은 ‘감일지구 사전예약자 피해대책위원회’를 꾸리고 LH사업본부 앞에서 “신혼부부가 학부모됐고, 자녀들은 성인이 다 됐다. 다른 행복주택이 사전예약단지보다 먼저 착공하는 것은 혹세무민이며, 정부가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줘야 한다”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땅집고] 하남 교산지구 조감도. /경기도


[땅집고] 사전청약 주요 입지와 물량. /국토교통부


10년 전 이명박 정부 때 나왔던 사전 예약과 거의 비슷한 정책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또 나왔다. 이달 8일 국토교통부가 오는 2021년 7월부터 수도권 공공분양 아파트에 대한 사전청약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본 청약보다 1~2년 앞서 사전청약을 실시해 실수요자들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겠다 것이 정부의 전략이다. 지난 3년간 현 정부의 실정으로 집값이 급등하고, 무주택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자 정부가 과거에 내놓은 정책을 다시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나온 사전청약 물량은 총 6만가구로, 내년 하반기 3만가구를 모집한 뒤 2022년 상반기 나머지 3만가구를 공급한다. 택지별로 ▲서울 5000가구 ▲수도권 3만2800가구 ▲3기신도시 2만2200가구 등이다.

이번 사전청약 물량에는 용산정비창(3000가구), 마곡지구(200가구), 노량진역 인근 군부지(200가구) 등 서울 및 수도권에서 ‘알짜 입지’로 꼽히는 곳들이 포함됐다. 하지만 본격 사전청약을 받기도 전에 수요자들 사이에선 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거 하남 감일지구 등 과거 사전예약제로 공급한 단지들 사례를 고려하면, 이번 사전청약 아파트들도 입주하려면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예비 청약자들 사이에선 “따지고 보면 입주까지 10년 기다려야 하는 데 더해 전매제한 기간도 최장 10년이다. 이 정도 기간이면 서울 재개발 매물을 하나 사는 것이 훨씬 이득 아니냐”라는 주장도 온라인을 통해 떠돌아 다니고 있다.

[땅집고] 2009~2010년 사전예약 받은 보금자리주택지구 단지들 공급지연 현황. /LH, 윤관석 의원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자료에 따르면 2009~2010년 사전예약으로 공급한 주택은 총 13개 지구에서 3만344가구. 이 중 1차(2009년 9월)로 공급한 시범지구 4곳(서울 강남·서초, 고양 원흥, 하남 미사)은 공급 일정을 맞췄지만, 2~3차 공급에선 사전예약 모집공고에 안내한 일정보다 최소 3년 8개월 이상 본청약이 지연되는 단지들이 나왔다. 토지보상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전예약을 진행했던 탓에 사업일정이 늦춰질 수밖에 없었던 것.

대표적인 곳이 하남 감일이다. B3블록과 B4블록의 경우 2010년 11월 사전예약을 받고 2013년 5월 본청약을 받기로 했는데, 계획보다 5년 7개월 늦은 2018년 12월에야 본청약이 시작됐다. 사전예약에서 입주(2021년 10월)까지 걸린 시간을 계산하면 무려 10년 11개월이다.

이 외에도 ▲구리갈매 B3블록 3년 8개월, S1블록 4년 2개월 ▲시흥은계 B1블록 5년 2개월, B2블록 4년 8개월 등 본청약시기가 지연된 곳들이 수두룩하다. 이 때문에 사전예약한 청약자 총 1만3398명 중 실제로 주택을 공급받은 인원은 전체의 41%(5512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간 기다림에 지쳐 당첨된 주택을 포기하고 다른 주택 매입에 나선 사전예약자들이 절반 이상이라는 얘기다.

[땅집고] 현재 3기신도시 및 수도권 공공택지와 관련해 토지보상이나 지자체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 사전청약을 받은 주택들 공급 일정이 크게 미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천시민광장(청사유휴지) 사수 시민대책위원회


전문가들 사이에선 문재인 정부의 사전청약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커, 정부가 발표한 일정만 믿고 청약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3기 신도시의 경우 토지보상 협의도 진행되지 않았고, 이 지역에서도 유물·유적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서울 강남·노원·마포구와 과천 등 수도권 공공택지에선 지역 주민들과 지자체가 택지조성을 심하게 반대하고 있는 등 입주 지연 변수도 많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지난 정부에서도 집값을 잡기 위해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 수시로 나왔지만, 정부가 처음 발표한 일정대로 주택 공급이 된 적은 드물다”며 “이번에도 사전청약으로 단기간에 내집 마련 수요를 잠재우고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계획처럼 될 가능성도 없고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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