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안보에 열 올리던 박정희가 여의도 한복판에 만든 것은

뉴스 정리=전현희 기자
입력 2020.09.30 04:39

인구 1000만명의 공룡 도시가 된 서울. 과연 서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땅집고는 서울 도시계획 역사를 다룬 손정목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의 저서 ‘서울도시계획 이야기(한울)’의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서울의 공간 구조 형성에 숨겨진 스토리를 살펴봤습니다.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②여의도공원은 ‘전시 대비 비행장’이었다

여의도를 가로지르는 여의도 공원은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 속 녹지 공원이다. 40대 이상의 서울 시민이라면 1998년 공원이 개장하기 전에 넓은 광장이 있었던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광화문 광장(2009년 개장)이 없던 때는 서울의 중심 광장이 이곳 ‘여의도 광장’이었다.

[땅집고]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한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대회. /자료=서울도시계획이야기(손정목)


여의도 중앙 핵심지에 12만평이나 되는 광장이 들어서도록 지시한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광장의 첫 공식적인 이름은 ‘5·16광장’으로, 역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지었다. 광장을 설계한 박병주 홍익대 교수는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 앞 워싱턴 몰의 그림을 참고해 화단과 녹지를 적절히 배치한 광장을 구상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그의 설계도를 두 번이나 반려했다. 박 대통령은 “이런 것이 아니고 포장만 해서 머리가 빠진 이마같이 훤한 광장을 만드시오”라고 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녹지나 화단이 없는 아스팔트 포장 광장이었다.

‘5·16 광장’ 공사 추진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기 위해 공사 현장을 찾은 서울시 간부들은 박 대통령이 ‘머리 빠진 이마같이 훤한 광장’을 만들라고 한 속뜻을 알 수 있었다. 이 광장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군사용 비행장’이었던 것이다.

당시 한국군의 월남 파병이 계속되고 있었고 미국 대통령은 한국 주둔 미군 감축을 발표했다. 김신조 등 무장공비 31명의 서울 침입(1968년)이 일어난 지 2년 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다. 1974년 육영수 여사의 피살 사건까지 겹치면서 박 대통령은 안보 의지를 표현하는데 더욱 힘썼다.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개통, 남산제1·2 터널 굴착으로 3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 대피호를 조성한 것, 경부고속도로에 2개소 비상시군용비행장을 설치한 일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땅집고] 1998년 여의도 광장을 공원으로 바꾸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으로 아스팔트가 철거된 땅이 드러나 있다./조선DB


‘5·16광장’은 1971년 2월 20일에 착공했고 같은 해 9월 29일 준공했다. 1984년 5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찾아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대회를 여의도 광장에서 열었다. 이 외에도 국군의 날 행사, 방공궐기대회, 대통령입후보자 정견 발표회, 대통령 취임식, 이산가족찾기, 개신교 기도회, 부처님 오신 날 행사 등은 모두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기록은 200만명(1974년 총력안보시민궐기대회)이다.

[땅집고] 도심 속 녹지 공원으로 탈바꿈한 여의도공원./산림청 제공


5·16광장은 곧 ‘여의도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98년 12월 말 공원으로 변모했다. 조순 서울시장 재임 때인 1997년 4월 10일 착공해 1998년 12월 말에 완공했다. 집회 장소로 쓰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원으로 용도를 바꿨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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