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이촌강촌과 이촌코오롱 아파트. 지난 8월 29일 리모델링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온라인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이촌강촌(1001가구)은 1998년, 이촌코오롱(834가구)은 1년 늦은 1999년 각각 완공했다. 입주 20년을 훌쩍 넘기면서 아파트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지만 재건축은 꿈도 꾸기 힘들다. 용적률이 300%에 육박하고, 안전진단 통과도 장담하기 어려운 탓이다. 장세엽 이촌강촌 리모델링 추진위원회 감사는 “최근 용산공원 조성, 용산 철도정비창 개발 같은 호재가 생기면서 리모델링 추진에 탄력을 받고 있다”면서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1001가구 중 540가구(53%)가 리모델링 사업에 찬성했다”고 했다.
최근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 추진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대폭 강화하자, 새로운 탈출구로 리모델링 사업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 실제로 재건축은 초과이익환수제 시행, 의무거주 2년 부과 등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반면 리모델링은 사업허용 연한이 준공 후 15년으로 재건축 절반에 불과하다. 사업 속도 역시 재건축보다 상대적으로 빠르다. 이 때문에 서울시내 곳곳에서 리모델링 신규 추진 단지가 늘어나고 있다.
■ “재건축보다 사업성 좋다?…강남·용산 등 속속 추진”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2분기 서울시내 리모델링 추진 단지 중 추진위원회 단계를 넘어선 경우가 총 56곳, 약 2만5600 가구로 나타났다. 지난해 2분기 40곳(2만4000여 가구)보다 크게 늘었다. 이 중 용산구 이촌현대, 강남구 개포우성9차, 송파구 오금아남 아파트는 착공에 들어갔다. 용산구 한강미주맨션 A동(20가구)·타워맨션(60가구), 강남구 대치현대1차(120가구), 강동구 둔촌현대1차(498가구) 등 4곳은 주민이주 직전인 행위허가를 밟고 있다.
송파구 성지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수직증축 리모델링 사업계획승인을 받았다. 지상 15층, 298가구였던 아파트에 3개층을 더 올려 18층·340가구로 바뀐다. 올 하반기 이주가 완료되면 내년 초 착공한다. 동작구에선 우성2·3차와 사당동 극동, 신동아4차 등 4개 단지, 4400여가구가 리모델링 조합설립인가를 위한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주민동의 절차를 밟고 있다. 주민동의율을 거의 확보한 구로구 신도림동 우성3차는 인근 우성 1·2·5차와 통합 리모델링을 모색 중이다.
한때 통합 리모델링을 추진했다가 무산됐던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가람(2036가구), 강촌(1001가구), 이촌코오롱(834가구), 한강대우(834가구), 이촌우성(243가구) 등도 사업 추진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 대형 건설사도 사업 참여에 적극적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대형 건설사들도 리모델링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그동안 대형 건설사 가운데 리모델링 사업에 적극적이었던 곳은 쌍용건설과 포스코건설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HDC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등도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수년간 리모델링 수주 실적이 없었던 HDC현대산업개발은 최근 서울 광진구 상록타워 리모델링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200가구 규모 상록타워를 수평 증축을 통해 229가구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라며 “청담 아이파크 등에서 선보였던 리모델링 기술력을 높게 평가한 것 같다”고 밝혔다.
롯데건설은 작년 초부터 리모델링 사업을 본격 검토해 ‘잠원 롯데캐슬 갤럭시 1차’를 수주했다. 지난 달에는 용산구 이촌동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설명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GS건설은 작년 말 송파구 삼전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을 수주했고, 경기도 광명시 ‘철산한신’에서 리모델링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 내력벽 철거 논란 여전…분양가상한제도 변수
하지만 정부가 리모델링 사업성을 크게 좌우하는 수직증축과 내력벽 철거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법규상 수직증축이나 내력벽 철거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안전성 문제로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공동주택(아파트) 리모델링을 위한 가구 간 내력벽 철거 안전성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지만 올 상반기로 예정됐던 결과 발표가 연말로 연기됐다.
리모델링 사업이라도 일반분양 물량이 30가구를 넘어가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것도 부담이다.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단지 7곳의 경우, 어린이집·경로당 등 커뮤니티시설이나 주차장 일부를 지역사회에 개방하고 친환경 에너지 설비 도입과 공공기여 등을 하도록 해 주민 부담이 커진 것도 문제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리모델링은 기존 주민 재정착률이 높아 재건축이나 재개발과 동일한 이익 환수 기준을 적용하면 곤란하다”며 “리모델링 사업이 가능한 수준으로 안전진단 기준을 빨리 확정해줘야 기존 추진 단지들도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