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작년 수도권의 한 지역에서 고시원 입주자 18명이 주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이변이 벌어졌다.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의 조사 결과 청약에 당첨된 18명의 고시원 주민들은 고시원 업주에게 돈을 지불하고 위장전입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아파트 청약의 지역 거주자 우선순위를 얻기 위해 실제 거주하지는 않은 채 고시원에 주소지를 옮긴 것이었다. 대응반은 5명의 위장전입자와 고시원 업주를 입건하고, 나머지 청약 당첨자 13명의 위장전입 혐의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국토부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은 부동산 범죄 수사 및 9억원 초과 고가 주택 실거래 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특별공급제도를 악용해 부정청약을 주선한 장애인단체 대표도 형사 입건했다. 한 장애인단체 대표는 2017년쯤 장애인과 국가유공자 등 총 13명에게 “돈을 벌 기회를 주겠다”며 접근해 이들의 명의를 빌렸다. 대표는 브로커를 통해 수요자에게 아파트 특공을 알선했고 그 대가로 당첨자들이 아파트를 전매해 얻은 프리미엄 중 수천만원씩을 챙겼다. 대응반은 13명의 명의 대여자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카페에서 집값담합을 부추긴 아파트 주민들도 형사 입건했다. 한 수도권 아파트 주민은 올 상반기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에서 "XX아파트 33평은 00억 이하로 내놓지 말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작성했다가 입건됐다.
중개사들이 단체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다른 중개사를 배제하다가 담합 혐의로 적발되기도 했다.
대응반의 9억원 이상 고가주택 실거래 조사에서도 편법증여 등 다양한 유형의 꼼수들이 드러났다.
법인 대표의 자녀이자 주주인 30세 남성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아파트를 13억5000만원에 매수하면서 법인에서 받은 배당소득 7억5000만원을 쓴 것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배당소득은 그가 소유한 실제 보유 지분을 크게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대응반은 법인 대표인 아버지가 그의 배당금을 아들에게 편법증여한 것으로 보고 국세청에 통보했다.
한 여성은 용산의 아파트를 언니로부터 11억5000만원에 구입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대응반은 그와 비슷한 조건의 아파트가 6개월 전 14억8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진 사실을 발견했다. 대응반은 특수관계인 간 저가거래를 통한 양도세 및 증여세 탈루 혐의가 있다고 보고 국세청에 넘겼다.
대응반이 적발해 국세청에 인계한 탈세 의심 사례는 555건으로, 이 중에서 가족 등 특수관계간 탈세는 458건, 법인 탈세는 79건이었다.
한 제조업체는 대구 수성구에 22억원짜리 주택을 구입하면서 상호금융조합에서 법인사업자 대출 13억원을 받은 사실이 들통나 금감원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의료업을 영위하는 한 개인사업자는 서울 강남구에 있는 70억원 상당 아파트를 매수했다. 하지만 그는 저축은행에서 의료기기 구입목적 등을 위한 용도로 받은 개인사업자 대출 26억원을 집값에 보탠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등은 그가 개인사업자 대출을 용도외 사용한 것으로 보고 조사할 예정이다.
대응반이 대출규정 위반 등으로 금융당국에 넘긴 37건의 이상거래 중 규제지역 주택 구입 목적의 기업자금 대출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은 14건, 대출금을 용도외 유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것은 22건이다.
한 법인은 대구 수성구의 한 주택을 작년 11월 구매했다고 신고했지만 대응반이 조사해 보니 실제 매매계약이 이뤄진 것은 1년 전인 2018년 12월이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의 출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과도한 규제로 자칫 부동산 시장이 위축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 단속이 과도해질 경우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 및 투자마저도 사라지면서 부동산 경기 전반이 위축할 수 있다”며 “이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