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흔히 은퇴 후 농사 지으러 시골로 가는 것을 귀농(歸農)이라고 한다. 반면 귀촌(歸村)은 농사 목적이 아닌, 물 맑고 산 좋은 곳에 집을 짓고 번잡한 도시 생활을 잊으러 가는 유형이다.
최근 은퇴자 중심으로 귀농도 귀촌도 아닌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이른바 ‘멀티해비테이션’(multihabitation)을 계획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멀티해비테이션은 복수, 여러 개라는 뜻의 멀티(multi)와 주거라는 의미의 해비테이션(habitation)을 합친 말이다. 도시나 농촌 한 곳에만 정착하기 부담스러워하는 현대인들의 새로운 주거 형태다.
■ 3억원대 작은 농촌 별장이 인기
최근 멀티해비테이션의 가장 흔한 유형은 평일에 직장이 있는 도시 집에서 지내다가 주말엔 시골 전원주택에서 보내는 것이다. 주중 5일은 도시에서, 주말 2일은 시골에서 보낸다는 뜻에서 ‘5도2촌’이라고도 하며 ‘4도3촌’도 가능하다.
과거 수도권에 지은 전원주택이나 타운하우스를 사려면 5억원에서 10억원은 줘야 했다. 이 금액을 부담하려면 서울 집을 팔고 농촌에 완전히 정착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비싼 가격 탓에 과거 타운하우스나 전원주택은 인기를 끌지 못했다. 도시를 떠나 영영 시골에 머물게 된다는 심리적인 부담은 금전 부담보다 더 컸다.
반면 멀티해비테이션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전원주택을 찾는 이들은 저렴하고 작은 주택을 원한다. 새 집을 사는데 드는 비용과 집 두 채를 함께 유지해야 하는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요즘 수도권 전원주택 가격은 3억원 내외다. 나중에 팔려고 내놓아도 수도권 아파트처럼 소형이 인기다. 전원주택을 홍보하는 기업은 저렴한 분양가를 강조한다.
전원주택 소형화 추세는 점점 확산하고 있다. 다양한 상품이 출시되고 전문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 있을 건 다 있는 콤팩트하우스, 브로셔를 보고 맘에 드는 집을 골라 몇 가지 사양을 선택하면 트럭에 실어 배달해주는 조립식 주택도 늘어나는 중이다.
■ 멀티해비테이션 수요에 맞는 정책적 지원 필요
전원주택 가격이 저렴하니 멀티해비테이션을 고려하는 젊은 층도 늘었다. 경기도 일산신도시의 한 타운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젊은 거주민들이 많았다. 젊은층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으면 멀티해비테이션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멀티해비테이션 문화가 자리잡으면 ‘지방 소멸’로 불리는 지방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 따른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다. 물론 이를 확산하려면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같은 다주택자 규제 정책으로는 멀티해비테이션을 확산하기가 불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지방 활성화를 위해 두 지역 거주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지원이 제공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다주택자를 규제하면서 이런 멀티해비테이션 주거 양식 변화를 따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오히려 시골 집을 팔고 서울 등지에 ‘똘똘한 한 채’만 사들이면서 서울 집값을 더욱 끌어올리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주거 양식 선호도 변화에 따라 부동산 정책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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