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강수의 상권탐방]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을지로3가역 상권'
을지로 3가역 골목은 30~40년 전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는 공간이다. 오래된 건물과 낡은 간판들이 즐비한 인쇄소와 공업사가 주를 이루던 곳이지만, 3~4년전부터 골목 곳곳에 젊은 감성을 노린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고 있다. 가로수길, 경리단길처럼 프랜차이즈 매장이 점령한 곳이 아닌,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나 메뉴로 그 매장만의 독특한 콘셉트가 이곳의 특징이다. 을지로3가의 젊은 창업자들은 창업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이들은 SNS를 기반으로 홍보 및 고객과의 소통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이런 모습이 상권에 빠르게 반영돼 을지로만의 독특한 콘셉트를 만들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색 상권
현재 상권이 형성되고 있는 을지로3가에는 낡은 건물에 인쇄소와 공업사, 타일, 건축자재, 대포집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 안에 숍인숍·전시장 등 복합공간이 하나둘 늘어나는 추세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과거로 돌아간 느낌도 받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매장 안을 들어가보면 딴 세상이다. 이곳 골목에 자리잡은 카페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빈티지 소품과 레트로한 인테리어 소품이 특히 많다.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작업공간 겸 생업을 영위하는 공간이자 개성 넘치는 분위기로 젊은층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이곳에 자리 잡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은 목재, 철판, 아크릴, LED 등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서 드나들다가 저렴한 임대료와 편리한 교통여건에 매력을 느껴 매장을 열고 눌러 앉은 경우도 많다.
을지로3가 옆 세운청계상가~삼풍상가 구간은 과거 음향장비, 카메라, LED조명을 팔던 곳이었는데, 젊은 창업자들이 하나둘씩 개성 있는 인테리어로 식당, 카페 등을 오픈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한계도 있다. 이 지역의 A부동산 관계자는 “최근 젊은 창업자들이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엘리베이터도 없고 50~6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이 많고 창업을 하더라도 업종 제한이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SNS 효과로 젊은층에게 인기
특히 을지로3가역 남쪽 골목의 가게들은 젊은 감성과 레트로풍 인테리어, 독특한 메뉴 등이 결합돼 20~30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지역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을지로’의 게시물은 12만 9000여 개, ‘#을지로맛집’은 4만 1000개, ‘#을지로3가’는 3만 4000여 개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을지로의 대표적인 카페 ‘분카샤’는 인쇄소골목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인쇄소의 낡은 간판들이 걸린 낡은 빌딩에 자리잡고 있다. 분카샤는 후르츠산도가 맛있는 일본풍 카페다. 그 외에도 호텔수선화, 잔, 커피한약방, 신도, 십분의 일 등도 SNS에서 인기를 얻으며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공간이다.
또다른 을지로 3가 상권의 대표 상품 중 하나는 ‘노가리호프골목’이다. 이곳 상인들이 번영회를 조직하여 상권 활성화와 질서 있는 옥외영업을 하겠다는 상인 간 자율협약을 체결하며 구청을 설득, 구청의 옥외영업을 허가받았다. 옥외영업을 허가한 구간은 을지로11길, 을지로13길, 충무로9길, 충무로11길 일대 이면 도로이다.
영업 허가 이후 이 지역의 호프집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을지로3가역 청계천 방면 북쪽 이면 도로에 위치한 노가리호프골목은 낮과 밤의 분위기가 180도로 바뀐다. 낮 동안 화물트럭만 오가던 거리에는 오후 6시가 지나면 수백 개의 간이 테이블이 펼쳐진다. 20대는 물론 60대의 다양한 연령층이 노가리골목에 빽빽하게 둘러 앉아 맥주와 노가리를 먹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2019년 인구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20대 유동인구가 20.9%로 연령별 비율 중 가장 높고 그 뒤를 이어 30대 19.3%, 40대 19.3%, 60대 19.1%, 50대 16.4%의 순이다. 20~30대의 비중이 높지만, 다른 연령층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대료, 권리금 저렴한 상권 등 개발 후 활력 기대
을지로3가 상권의 가장 큰 이점은 바로 저렴한 임대료와 권리금이다. 현재 1 층 점포의 3.3㎡(약 1평)의 점포 임대료는 10만 원 안팎이다. 권리금은 입지에 따라 1000만~3000만 원 수준이다. 특히 기존 1층의 경우 공실이 없어 대부분의 창업자는 2층 이상에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을지로는 도시재생사업도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2018년 3월 ‘다시세운 프로젝트 2단계 사업’ 착수했다. 창작인쇄산업 활성화, 서울의 남북 보행 네트워크(종묘·세운상가·퇴계로·남산) 완성 2가지를 축으로 추진된다. 창작인쇄산업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할 ‘인쇄 스마트 앵커’는 기술연구· 교육공간·전시·판매시설, 청년주거공간까지 집약된 복합시설로 조성될 예정이다. 창업과 주거가 결합된 청년사회주택도 2020년까지 400호 규모로 공급될 예정이며 상권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현재 을지로3가의 낡은 건물에서 기존에 영업 중인 인쇄 가게, 공업소 등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을지로3가에 영업 중인 기존 가게들은 수십 년간 가게를 지켜온 이들이 거래처와 연계돼 있고, 건물주들과의 관계도 오래돼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젠트리피케이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 지역 중개사무소의 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