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신혼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연간 소득이 9000만원이면 정말 소득이 높은 편이죠. 그래도 이 정도 버는 신혼 부부가 부모 도움 없이 9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수는 없지요. 이번에 정부가 또 대책을 만들어서 청약 기준을 완화하기는 했는데, 돈 많은 부모를 둔 신혼부부만 신나게 생겼어요.” (30대 신혼부부)
“서울 아파트 청약 당첨 가점 커트라인을 한번 보세요. 60점 초반은 돼야 하거든요. 자녀 2명은 두고, 40~50대까지 한 번도 내 집 가지지 않고 버텨야 가능한 점수인데 그걸 빼앗아서 젊은층에 줘 버린 겁니다.”(40~50대 중년층)
주택 시장은 난장판으로 만든 문재인 정부가 또 7·10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도 나오자마자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이번에는 국민주택과 민영주택의 생애최초·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을 확대하고 신혼부부의 경우 소득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불과 20여일 전 발표한 6·17대책이 발표와 동시에 집값이 급등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자, 또 보완 대책이라고 만든 것이 이번 대책이다.
7·10대책의 핵심 중 하나는 주택 정책에 반발이 큰 신혼부부와 20~30대에게 청약 기회를 더 주겠다는 취지에서 만든 것인데, 전체 공급량은 늘지 않고 다른 세대의 청약 물량을 뺏어 젊은층에게 나눠주는 방식으로 대책을 만든 것이 요지다. 그러자,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가 “아파트로 계층간·세대간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장년층 청약 물량 빼앗아, 신혼부부·젊은층에 배정
그동안 청약 시장의 큰 원칙 중 하나는 가점이 높은 청약자에게 당첨 기회를 많이 준다는 것이었다. 투기과열지구에서 85㎡ 이하 주택은 모두 가점제로 선발했다. 무주택 기간이 청약 가점의 큰 요인이다보니 20~30대보다 40대 이상의 청약자들이 유리했다. 집 없이 오래 참고 기다린 국민에게 기회를 더 준다는 취지였다. 현재 서울의 청약 가점 커트라인 평균은 60점대 초반이다. 자녀를 하나 둔 3인 가족이라면 무주택기간 15년, 청약통장 가입기간 15년을 모두 채우면 64점으로 당첨 안정권에 든다.
이러다보니 30대는 상대적으로 무주택 기간이 짧아 청약에 불리했다. 30대의 경우 적어도 2명 이상의 자녀가 있지 않으면 최근 청약시장에서는 당첨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물론 신혼부부 특별공급(이하 신혼특공)을 활용할 수 있지만, 특공의 경쟁률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자녀 수는 당첨을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통한다. 최근 신혼부부 특별공급 경쟁률도 수백대1을 넘어섰다.
젊은층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급등해 이번 생에는 집을 살 수 없게 됐다”식의 불만을 쏟아내자, 정부는 이번 대책을 만들면서 특별공급 유형 중 ‘생애최초’ 유형을 민영주택까지 확대 적용했다. 민영주택의 경우 공공택지에 짓는 아파트에는 15%, 민간택지 아파트에는 7% 물량을 배정했다. 원래 민영 주택에는 생애최초 특별 공급이 없었다. 또 국민주택에선 생애최초 공급량을 종전보다 5% 늘려 배정했다. 또 신혼부부들이 민영주택에 청약할 경우 분양가가 6억원 이상이면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130%, 730만원(맞벌이 140%, 787만원)인 가구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내용은 복잡하지만 대책의 요지는 또래보다 돈을 잘 버는 상대적인 고소득 젊은층도 청약할 수 있게 아파트 청약 물량을 5~15% 정도 더 배정한 것이다. 이 물량은 기존에 40~50대 중장년층이 주로 청약하던 물량인데 이것을 빼앗아 젊은층에 줬다.
■지지층 잡기 위해 부동산 규제 쏟아낸 결과, 꼼수·편법 늘어
이 복잡한 이번 규제의 수혜자는 돈 많은 부모들 둔 고소득 신혼부부다.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은 부연구위원은 “연소득이 9000만원까지 올랐다고는 하지만, 소득이 이정도 되더라도 부모의 도움 없이 8억~9억원 대 청약할 수 있는 신혼부부는 사실상 없다”며 “부자 부모를 둔 둔 신혼부부가 이번 대책의 최대 수혜자”라고 말했다. 반면, 집을 한 번 소유했거나 혼인기간이 긴 40대들의 경우 당첨 기회가 크게 줄었다. 수도권 전역의 청약경쟁률이 높아져 40대들 사이에서는 역차별 논란도 거세다. 온라인 게시판 등에는 “치열하게 가점을 쌓아온 중년층 일반공급 물량을 더 확대해야 한다”, “서울 아파트에 당첨되는 건 모든 연령대가 다 어렵다”며 반발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청약제도가 복잡한데, 이번 정부 들어 수많은 규제를 만들다보니 ‘꼼수’와 ‘편법’이 부쩍 늘었다. 젊은층 사이에 유행하는 방법 중 하나가, 맞벌이 부부 중 하나가 육아 휴직할 때 소득이 잠시 낮아지면 이 기간을 활용해 청약하는 방법이다. 또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혼인 신고를 무기한 미루는 방법도 있다. 은평구에 사는 이모(30)씨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생애 한 번만 쓸 수 있기 때문에 당첨 요건을 갖출 때까지 시간을 벌겠다며, 자녀를 놓을 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 부부가 혼인하지 않고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로 동거해 대출을 받는 등 방법도 온라인 상에 유행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가 만들어낸 꼼수다.
이처럼 집값이 폭등하고, 청약제도 자체가 누더기가 된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는 목적보다는 지지층을 잡으려는 목적으로 부동산 규제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에서 소득기준을 완화하고 대출 한도를 늘려 내집마련 기회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공급량 자체가 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국민들의 내집마련 기회는 단 1%도 늘지 않았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요자들이 원하는 지역에 규제를 완화해 공급을 대폭 늘리는 정책이 없으면 청약 경쟁률만 더 높아지고, 꼼수만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김리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