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뉴욕선 1년 만에 짓는 30층 아파트, 서울선 3년 걸리는 이유

뉴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입력 2020.07.19 05:00 수정 2020.07.19 07:38

땅집고가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책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이 펴낸 '프리콘(Precon): 시작부터 완벽에 다가서는 일(엠아이디)'입니다.

[땅집고 북스] 국내 건설 프로젝트는 왜 오래 걸릴까

국내 건설 프로젝트의 공사 기간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길다. 예를 들어 30층 아파트를 뉴욕과 서울에서 동시에 짓는다면, 지하층 깊이에 따라 공사 기간에 대한 변수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뉴욕에서는 1년 만에 완료하는 데 비해 서울에서는 3년 여의 기간이 걸린다. 대략 3배 정도 더 걸리는 것이다. 왜 이토록 공사 기간이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습관처럼 고착된 오랜 관행에 따른 결과로, 국내의 대다수 발주자와 기술자는 공기가 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땅집고]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조선DB


국내에서 건설 공사 기간이 긴 이유를 분석해보면, 공기 단축이 곧 부실 공사라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부실 공사 사례를 언론이 부각해 보도할 때마다 ‘무리한 공기 단축이 불러온 부실 공사’란 말이 빠짐없이 등장하고, 대중 뇌리에 ‘공기 단축=부실 공사’라는 등식이 새겨져 있다. 공사 기간 단축은 부정적인 요인이며 부실 공사로 직결된다는 인식 때문에 공기를 적극적으로 단축하겠다는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로는 공기 단축과 비용의 상관관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건설 투자자, 개발업체, 시공업체조차도 건설 프로젝트의 관리 포인트로 시간 비용 개념을 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하루 비용이나 한 달의 시간 비용을 계산하지 않으며, 이를 지표로서 관리하지 않고, 어느 프로젝트가 하루 일찍 또는 하루 늦게 준공된 경우, 하루치 기회 이익(또는 기회 손실)이 얼마인지 관리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건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업체가 시간 비용 개념을 주요 지표로 반영해 하루의 기회 이익을 관리하며, 프로젝트 초기부터 공사 기간을 지키기 위한 체계적인 공정 관리를 수행한다. 국내에서도 땅값이 건설비를 상회하는 곳이 많아 건설 사업 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엄청난 기회 이익을 창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시간 비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매우 희박하다.

프로젝트가 단기간에 완성돼 창출하게 될 부가가치(기회 이익)는 추가로 투입된 돌관 비용에 비해 큰 이익을 창출하는 경우가 많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마카오가 2001년 카지노 독점 체제를 깨고 외부에 카지노 시장을 개방했을 때, 최초의 투자자는 미국 라스베가스의 샌즈그룹(Las Vegas Sands Corp.)이었다. 이 회사는 최초로 마카오 샌즈 카지노에 약 3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하면서, 투자금을 1년 6개월 안에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타당성 검토를 기초로 사업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돌관 공사비를 추가 투입하면서 가능한 한 최대치로 속도를 높여 카지노를 완공했다. 놀랍게도 마카오 샌즈 카지노는 완공 후 영업 6개월 만에 투자금을 회수했다. 이후 이 회사는 마카오에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추가 투자를 할 수 있었고, 이어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프로젝트에도 투자했다. 사업 기간 단축이 수익으로 연결되고 시간이 곧 돈이라는 생각은 외국의 전문 투자가들에게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땅집고] 미국 샌즈그룹이 2조4000억원을 투자해 2007년 8월 개장한 마카오 베네치안 리조트. /조선DB


세 번째로는, 정부 조달 체계의 문제점과 프로젝트 관리 부실이 이유다. 공사 기간이 많이 소요되는데도 여전히 많은 프로젝트가 당초 계획된 공사 기간조차 지키지 못해 고객과의 분쟁을 초래하고 있다. 공기 지연이 발생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CM)의 부족, 잦은 발주자의 방침과 설계 변경, 설계 부실과 지연에 따른 설계 변경, 인허가를 포함한 공공 기관과의 문제 해결 능력 부족, 민원에 의한 공사 중단, 설계자 및 시공자의 공기 관리 인식 부족과 관리 능력 부족 등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발주자나 시공업체는 관행적으로 책정된 층당 1개월+α라는 국내의 기준 공사 기간을 깨려고 시도해야 한다.

공공 프로젝트는 공기나 예산 초과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1999년 당시 건설교통부에서 발표한 ‘공공 건설 사업 효율화 종합 대책’에 따르면, 공공 프로젝트는 많은 경우 예산과 사업 기간이 초과되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추진한 7대 대규모 SOC사업에서 사업비는 평균 2배, 사업 기간은 3년 정도 증가했다.

네 번째로, 공기 단축이 기술력이고 공기 단축 기술이 건설 기업의 차별화 포인트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제도적으로 공기 단축을 촉진하는 인센티브 조항이 없는 점이 문제다. 자체 개발 사업이 아닌 경우 건설업체는 공기를 단축해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없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오히려 준공 시점까지 관리비만 더 소요된다. 감리업체는 공기를 단축하면 용역비가 깎이는 결과를 가져와 직접적인 수입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공기 단축 의지가 전혀 없다. 오히려 공기가 늘어나면 용역비가 늘어나고 수입도 따라 늘어나는 역설적인 결과가 생긴다.

국내에서 공사 기간을 기산할 때 층당 1개월+α의 등식은 LH공사의 공기 책정 정책에 기인한다. 미국 뉴욕에서는 콘크리트 구조의 고층 아파트나 호텔을 여름이든, 겨울이든 이틀에 한 층씩 공사하는 2-day 사이클 공법이 보편화돼 있다. 30층 아파트를 통상 12개월 만에 완료한다. 반면 국내에서 아파트는 아직도 층당 1개월+α의 등식을 적용해 3년+α의 공기를 고수하고 있다.

[땅집고] 서울의 한 건축 공사 현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조선DB


뿐만 아니라 건설 선진국처럼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획기적으로 공기 단축을 촉진한 기술 개발 사례나 현장에 적용한 사례가 거의 없다. 일본에서는 수많은 공업화 공법이나 자동화 공법이 개발됐고 실제로도 적용되고 있다. 일본 다이세이(Taisei) 건설은 1990년대 초 T-UP이라는 획기적인 공법을 개발해 요코하마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빌딩 공사에 적용했다. 이 공법은 지상에서 지붕층 구조물을 먼저 조립한 후 지붕 구조물 위에는 이동식 크레인을 장착하고, 지붕 구조 하부에는 제조 공장에서 쓰는 오버헤드 크레인을 설치해 공장 생산 라인에서처럼 전천후로 시공하는 공법이다.

이 공법은 지붕층 구조체 전체를 유압 장치로 끌어올리면서 하층 구조체 공사를 기후에 관계없이 시행하고 외부 유리벽인 커튼월을 즉시 시공하는 적층 공법을 적용한다. 마감 공사와 골조 공사를 병행해 획기적으로 공기 단축을 실현하는 선진 공법이다. 일본 건설 현장에서는 리프트 슬래브 공법, 화장실 단위화 공법 등 공업화 공법이 개발돼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다섯 번째로 국내 프로젝트에서 공정 관리 도구를 사용한 체계적인 공정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수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프리마베라(Primavera)와 같은 공정 관리 소프트웨어를 사업 초기부터 공사 완료까지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현장은 특수한 몇몇 프로젝트들 외에는 거의 없다. 대부분 바 차트 수준의 공정표로 공정 관리를 하고 있다. 국내 건설 현장은 대부분 경험적 지식에 의존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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