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2015년 입주를 시작해 올해 입주 5년차인 위례신도시. 신도시 남쪽에 있는 창곡천과 가까운 ‘중앙광장’ 주변 지역이 위례신도시의 핵심 상권으로 꼽힌다. 그런데 광장 대로변을 따라 지어진 큼지막한 상가들은 텅텅 비어있고, 상가 마다 대형 ‘임대문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광장 주변의 중앙타워, 위례오벨리스크, 성희프라자, 힘찬프라자, 엘포트몰 등 거의 모든 상가 건물에 공실이 넘쳐난다.
2012년 말 첫 아파트가 입주한 후 지구 조성이 거의 끝난 경기 고양 삼송지구도 마찬가지. ‘삼송역현대썬앤빌 더트리니티’ 상가는 지하철 3호선 삼송역과 맞붙어있는데도 1층 총 21실 중 약 80%(17실)가 공실이다. ‘e편한세상시티삼송(1~3단지 총 2930가구)’ 단지 내 상가 ‘월드 에비뉴’도 대로변 안쪽 상가들이 줄줄이 비어있다.
지난 10년 사이 조성된 우리나라의 신도시에선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상가 시장에는 정반대로 빈 상가가 넘쳐나고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상가에 들어가 장사할 사람은 별로 없는데, 상가 공급이 넘쳐난 것이다. ‘투자는 본인책임’이라는 원칙에 따라 상가에 투자한 개인이 첫번째 피해자다.
하지만 따져보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주택은 부족한데 빈 상가는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뒤늦게 “빈상가를 주택으로 전환하는 것을 지원하겠다”고 대책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방안도 없고 실현 가능성도 크지 않다. 현재로선 정부 정책은 믿을게 못된다는 얘기다.
■LH, 비싼 상업용지 일부러 안 줄인다?
집은 부족해 집값이 치솟는데, 왜 전국의 신도시마다 빈상가가 넘쳐날까.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국토교통부와 산하의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도시설계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와 LH는 신도시를 조성할 때 토지 용도별 면적 비율을 정한다. 택지개발촉진법, 공공주택특별법, 도시개발법 3개 법률에 맞춰 토지이용계획에 따라 땅을 구획한다. 그런데 LH 관계자는 “그동안 공공주택 비율은 신도시별 계획 인구에 맞춰 정하고 있던 반면, 상업용지 비율을 설정하는 공식 규정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침이 없다보니 최근 조성된 신도시라도 관행에 따라 십수년 전 신도시와 비슷한 비율로 상업용지를 배정했다. 이 지점이 바로 신도시 상가 포화 현상의 근본 원인이다.
고영섭 AP파트너스 대표는 “세상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모두 쇼핑을 하고 있는데, 신도시 상업지 비율을 예전과 똑 같은 비율로 설정하니 공급 과잉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 대표는 또 “요즘에는 상업용지 뿐 아니라 근린생활시설용지나 주상복합용지·주차장용지 등 다른 용지에 들어서는 건물들도 상가를 끼고 건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실제 상가 비율은 LH가 설계한 것도 보다 훨씬 높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LH고양직할사업단에 따르면 삼송지구 상업용지는 전체 신도시 면적의 2.5%지만, 근린생활시설용지까지 합하면 이 비율이 4%로, 이어 상업시설을 지을 수 있는 다른 용지 면적까지 고려하면 상가 공급량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부동산 업계에선 LH가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도시 상업용지 비율을 줄이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LH는 임대주택용지는 토지조성원가의 60~80%로, 단독주택·분양주택용지는 감정평가액으로 공급하는 반면 상업용지는 경쟁입찰을 통한 최고가 낙찰 형태로 팔고 있다. 이 때문에 상가가 많이 들어가는 상업용지 비중이 높아야 LH의 수익이 커진다.
건설사들은 상업용지를 낙찰 받아 주택과 함께 상가·오피스를 같이 지어 팔기 때문에 높은 값을 내고서라도 땅을 산다. 최근 10년 동안 LH의 신도시 상업용지 최고 낙찰가율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동탄2신도시 258% ▲2015년 세종 349% ▲2017년 다산신도시 346% 등 통상 원가의 2~3배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싼 값에 땅을 산 건설사들은 온갖 마케팅·홍보 수단을 동원해 소비자에게 상가를 분양한다. 하지만, 입주 무려 보면, 상가는 공급이 넘쳐나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임대료가 떨어지고, 상가 매매가격도 분양가 이하로 떨어진다. 결국 ‘정보가 가장 부족한 최종 소비자’인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LH가 정보가 부족한 국민들 상대로 상가를 비싼 값에 팔아 치워 돈을 챙겼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 분양가보다 떨어진 상가 수두룩…‘공실의 악순환’ 벌어져
“투자는 본인 책임”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정보를 알 수 없는 상가 투자자 입장에선 원망과 한탄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일단 상가가 공실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상권 자체가 위축되고, 먼저 입점한 상가까지 장사가 되지 않은 악순환이 발생한다. 임대료를 더 떨어지고, 상가 매매가도 같이 떨어진다.
실제로 위례신도시 ‘중앙타워’는 2017년 7월 완공 당시 44㎡ 점포 임대료 시세가 보증금 1억원에 월세 400만원 선이었다. 문을 연지 3년만인 지금은 보증금 5000만원에 임대료 250만원으로 반토막 수준이 됐는데도 공실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삼송지구 ‘e편한세상시티삼송’ 단지 내 상가 ‘월드에비뉴’에선 최초분양가가 21억원이었던 111㎡ 점포가 17억6000만원에 매물로 나와있는 등, 분양가보다 매매가가 낮아진 상가들이 수두룩하다.
LH는 뒤늦게 대책을 세웠다. LH는 “지난해 11월부터 ‘공공주택 업무처리지침’이 개정돼 앞으로 조성하는 신도시에선 상가 공실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뀐 지침에 따르면 ▲택지지구 연면적별로 지역소비수준 등을 분석 ▲다른 용지에 허용하는 상업시설까지 고려 ▲상업용지 일부를 복합용지로 설정, 수요에 따라 용도 결정하는 등 3가지 지침에 따라 상업용지 비율을 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미 분양이 끝난 신도시는 답이 없다. 새로 바뀐 지침도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경기 침체마저 장기화 되고 있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앞으로 온라인·모바일 마켓이 더 발달하면 상가의 비중은 정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줄여야 할 것”이라며 “도시 설계할 때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 정부와 LH가 좀더 책임감 있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