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석의 법률톡톡] 반려동물 키운다고 전세계약 파기…책임은 누가?
[궁금합니다]
반려견 3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A씨. 집주인 B씨와 보증금 2억원에 2년짜리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4000만원을 송금했다. 그런데 입주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갑자기 B씨로부터 내용증명 우편이 날아왔다. “반려견을 3마리나 키우는 줄 모르고 계약했다. 동물과 함께 산다면 주택을 인도할 수 없다”며 “계약금을 수령할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이 돈을 공탁하겠다”라는 내용이었다.
A씨는 B씨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임대차계약서 특약에 ‘반려견 사육을 금지한다’는 등의 조항이 없었고 입주를 코 앞에 두고 전셋집을 다시 구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들기 때문이다. 분노한 A씨는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기로 결심했다. 임대차계약서 6조에 따라 B씨가 계약을 파기하면 계약금의 2배인 8000만원을 상환해야 하니, 나머지 4000만원을 송금하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B씨는 “전셋집 상태에 영향을 주는 반려견과 함께 입주한다는 사실을 미리 고지하지 않은 A씨의 행동은 계약상 고지의무 위반 또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여서 손해배상 의무가 없다”고 반박했다. 과연 재판 결과는 어떨까.
[이렇게 해결하세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판 결과 세입자 A씨가 승소했다. 1심 판결에서는 500만원 배상을, 2심 판결에서는 1200만원 배상을 인정받았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7나63995). 이유가 뭘까.
부동산 거래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이 적용된다. 거래 상대방이 일정한 사정에 관한 고지를 받았더라면 그 거래를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 상대방에게 해당 사정을 사전에 고지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 고지의무 대상에는 법 규정뿐만 아니라 계약·관습상 내용도 포함한다.
재판부는 A씨가 고지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임대차계약서에 반려견과 관련한 내용이 전혀 없고, B씨가 임대차계약 시 ‘반려견을 기르지 않는 것이 위 임대차계약의 조건’이라고 고지하지 않은 점 ▲현재 사회 통념상 공동주택이라도 반려견을 기르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 점 ▲원고가 기르는 반려견이 3마리여도 모두 소형견이라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주택 인도를 거부하고 계약금을 반환한 것은 임대차계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손해배상 금액으로 4000만원을 주장하는 것은 과하다고 봤다. 집주인 B씨가 주택 인도를 거부한 것은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며, A씨에게도 비교적 큰 손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1심에서는 손해배상금으로 500만원만 인정됐다. 하지만 2심에서는 소송비용 등을 감안하면 500만원은 지나치게 적다며 12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은 2015년 457만가구에서 지난해 591만가구로 30% 늘었다. 앞으로 세입자들이 임대차목적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행위를 꺼리는 임대인이라면 계약서에 관련 내용을 특약사항으로 명시해야 분쟁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