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전국 상가 공실률이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곳곳에서 문 닫는 점포가 속출하고 있다. 땅집고는 ‘벼랑 끝 상권’ 시리즈를 통해 몰락하는 내수 경기의 현실과 자영업자 목소리를 담아 전한다. 열 네번째 현장으로 종로 상권을 찾았다.
[땅집고] “이름만 ‘젊음의 거리’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종로에서 놀기는 하나요. 노점상 96곳 가운데 현재 영업하고 있는 곳은 절반도 안 될 겁니다. 요즘엔 한 달에 겨우 100만원 벌까요.” (젊음의 거리 60대 노점상인 최모씨)
지난 7일 오후, 한때 서울 상권의 중심지였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 ‘젊음의 거리’를 찾았다. 도로변에 있는 대형건물 창문엔 임대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있다. 과거 청바지로 유명세를 탄 의류 브랜드 ‘뱅뱅’ 매장이 있던 자리다. 2016년 말 뱅뱅 매장이 빠져나간 이후 이 건물은 3년 넘도록 빈 채로 방치돼 있다. 주변 거리도 한적했다. 인근 직장인과 어학원 수강생 몇 명만 오갈 뿐 상가를 찾는 이들을 보기는 힘들었다. 젊음의 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경기불황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종로 상권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종로 상권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2000년대 초반까지 오랜 역사를 간직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권이었다. ‘상권의 1번지’라고도 했고, 기업들도 종로로 몰려 들었다. 종로에는 젊은층에게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높은 임대료를 내고도 플래그십 스토어(브랜드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장)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종로는 쇠퇴의 단계를 넘어 몰락 수준으로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종로를 찾던 젊은 소비자들이 발길을 돌렸고, 20~30대 주력 소비층은 낙후된 종로 대신 광화문이나 익선동, 을지로 등 신흥 상권으로 떠나버렸다.
■‘목 좋은 곳’도 수년째 텅텅 비어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보신각부터 종로3가 사거리까지 약 850m에 이르는 대로변을 취재했다. 1층 공실만 22곳에 달했다. 3곳은 건물 전체가 텅 비어있었다. 이 거리는 소위 ‘목 좋은 곳’으로 통하는 곳인데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건물을 비워놓았다. 실제 길거리를 걸어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공실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썰렁했다. 종로 상권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로 이름을 날렸던 ‘빠이롯트’ 빌딩도 마찬가지다. 4층짜리 건물 창문에는 총 116평(383㎡)를 전체 임대한다는 안내문구가 붙어있다. 종각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이 건물은 7년째 공실이다.
KB국민은행 리브온 상권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종로 상권(점포 775곳)의 매출 규모는 371억1000만원으로 1년 전 596억3000만원과 비교해 37.8% 급감했다. 최근 6개월 사이 문 닫은 점포만 90곳에 달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코로나19 전에도 공실이 많았지만, 올해 들어서 전보다 2~3배는 더 많아진 것 같다”며 “권리금을 아예 없앴거나 금액을 낮춘 매물들이 나오고 있지만 들어오려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공실 폭탄’에도 여전히 비싼 임대료
상권은 무너지고 있지만, 임대료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종로 대로변에 있는 20평 상가의 현재 시세는 보증금 2억원에 월 임대료는 1000만원 안팎이다. 빈 점포 중에서는 10평짜리 상가의 월 임대료가 1500만원에 육박하는 상가도 있다.
종로 지역의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종로 건물주들은 자수성가를 이뤄 서울 최고 중심지에서 건물을 구매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 쉽게 건물을 내놓지 않는 성향이 강하고, 당장 매출이 나오지 않더라도 현금이 급하지 않기 때문에 임대료를 낮추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높은 임대료 때문에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빈상가가 늘어나니 상권이 무너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60대 건물주 A씨는 “향후에 건물을 매매할 때 수익률이 낮으면 건물 가격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공실이 지속돼도 임대료는 낮추지 않는다”며 “대신 최근에 몇 개월간 렌트 프리(임대료 무료)를 해주는 점포가 매물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소비층, 광화문·익선동·을지로로 떠나
그나마 종로를 오가는 사람도 고령화됐다. KB국민은행 리브온 상권분석에 따르면, 종로 상권의 연령대별 유동인구는 55세 이상 남성 비율이 20.5%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45세~54세 남성(13.6%), 35세~44세(12.5%)이 뒤를 이었다. 20대의 비중이 가장 낮았다. 거리에서 만난 행인 현창민(30) 씨는 “종로는 개성도 없고, 썰렁한 건물도 많아 구태여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놀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종로는 현재 상태로는 당분간 상권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슬럼화가 진행되면 언젠가는 임대료와 건물 가치는 내려가기 마련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 다시 이 상황에 적합한 상권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나 종로구 등 정부가 나서서 “종로를 살립시다”라며 현실성 없는 이벤트식 정책이나 사업을 벌이고 돈을 지원해 봐야 세금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권강수 ‘상가의 신’ 대표는 “종로가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절박한 상인연합회나 건물주들이 자체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서 종로 같은 대형 상권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