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전세 계약기간 끝나면 이제 올수리해서 들어가 살려고요. 원래는 재건축 완공할 때까지 거주할 계획이 없어서 세입자분들한테 걱정말고 오래 머무르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미안하네요.” (은마아파트 소유주 A씨)
정부가 6·17 부동산 대책을 통해 ‘갭(gap) 투자’를 막는 대책을 쏟아내면서 전세 세입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전세대출을 통한 아파트 매입 금지, 주택담보대출시 6개월 이내에 전입, 재건축 주택 2년 거주 의무 등의 규제가 모두 집주인으로 하여금 전세를 내놓는 대신 직접 거주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갭투자와 다주택자를 잡겠다며 내놓은 정책이 되레 서민층 전세 세입자에게 독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 “이제 나가주세요”…세입자 바들바들 떤다
이번 대책에서 세입자들에게 가장 직격탄이 된 규제는 재건축 단지에서 집주인들에게 2년 거주요건을 부여한 점이다. 국토부는 재건축 단지가 올해 말까지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지 못하면 조합원이라도 그 집에 2년 이상 거주해야 새 아파트 분양권을 주기로 했다. 학군이 좋다고 소문난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4424가구 중 60% 이상이 전·월세 세입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마아파트에 사는 한 세입자는 “중학교에 들어갈 아이들 교육을 위해 작년에 이사했는데, 중학교도 마치치 못하고 새 집을 구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하다”고 했다.
대치동 일대에서는 일반 아파트까지 전세 매물이 급감하고 있다. 권희영 대청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래미안 대치팰리스’는 강남 대치동에서 보기드문 새 아파트인데다 학주근접 단지로 애초에 전세매물이 귀한데 대책 발표로 아예 매물이 다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무엇보다 전세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정책은 전세자금 대출 규제다. 국토부는 투기과열지구에서 시세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신규 구입하는 경우 기존에 받은 전세대출을 즉시 회수하기로 했다. 지난 12·16대책에서는 주택 가격 기준이 9억원이었는데 이번에 3억원으로 낮아졌다. 사실상 수도권 전역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이용해 아파트를 살 수 없게 한 것이다.
규제지역에서 집을 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 주택가격과 관계없이 6개월 내 무조건 새 집으로 전입해야 한다는 규정은 특히 새 아파트 입주 과정에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기존까지는 규제지역에 따라 최대 2년 내 전입해도 괜찮아 새 아파트 입주시 전셋집이 대거 공급되면서 전세금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앞으로는 입주 후 2년이 지날때까지는 입주단지에서 전세매물이 줄어들 전망이다.
■ 강남 곳곳에서 ‘전세금 신고가’ 경신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으로 곳곳에서 전세금이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강남 신축단지의 경우 대책 발표 후 전세금 신고가를 경신한 단지가 속속 나왔다. 지난20일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 대치 팰리스’ 아파트 114㎡(이하 전용면적)가 보증금 22억원(16층)에 전세계약했다. 지금까지 최고가였던 작년 9월 전세금과 금액이다.
지난 19일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 164㎡는 전세금 21억5000만원에 임차인이 들어왔다. 지난달 13일 같은면적이 18억5000만원에 계약한 것과 비교하면 불과 한 달새 3억원 급등했다. 서초구 잠원동 ‘아크로리버뷰신반포’ 78㎡도 지난 20일 전세 보증금 14억원에 실거래해 지난달보다 5000만원 상승했다.
■ 전세 사라지나… “임대차 시장 월세 중심으로 바뀐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규제 기조가 이어질 경우 전세 품귀를 넘어 전세 제도가 아예 사라져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의 김태규 이화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집주인들이 이제 집에 들어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거둬들인 전세 매물이 많다”며 “정부가 임대차 3법을 예고하면서 전세 말고 월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규제 영향으로 기존 매매수요가 전세로 흘러들면서 수요가 급증하는데 비해 공급은 예전만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세금이 지금보다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도 “만약 정부가 임대차 3법을 현재 제시한 내용대로 시행한다면 저금리 기조와 맞물려 전월세 시장의 트렌드가 월세로 기울 수 있다”고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가 해명한대로 집주인이 살던 집을 처분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임대를 포함한 주택 총량에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며 “그러나 이러한 주거 이동 과정에서 세입자들만 기존에 살던 주택보다 입지가 떨어지거나, 주거 품질이 더 낮은 곳으로 이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