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뒤탈 불 보듯 뻔한데…건축주가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

뉴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입력 2020.06.22 05:45 수정 2020.06.22 13:42

땅집고가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책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이 펴낸 '프리콘(Precon): 시작부터 완벽에 다가서는 일(엠아이디)'입니다.

[땅집고 북스] 우리나라에서 건설하기는 고행길인가 - 최저가의 함정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누구든 일반적으로 싼 것을 선호한다. 싼 것이 모두 나쁜 것도 아니다. 제품 종류에 따라 가성비가 최우선이 될 수 있으며,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물건은 가격을 기준으로 싼 것을 골라 사도 괜찮다. 저가 브랜드, 저가 상품 판매 업소가 성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건설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건설의 결과물은 한 번 지어지면 최소 50년, 100년 이상을 바라본다. 건설에서는 싼 게 비지떡인 경우가 정말 많다.

공사비를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뒤탈이 생기게 마련이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조선 DB


서울지방법원의 조정위원으로 봉사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건설 관련 소송 사건이 의료 소송 사건 못지않게 압도적으로 많은 건수를 차지했다. 조정(調停)이란 민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당사자들, 즉 원고와 피고를 대리인인 변호사와 함께 불러서 상호 양보를 하게 하고, 타협을 유도하여 재판 절차를 끝내는 아주 바람직한 제도이다. 이러한 조정 사건을 20여 년 담당하면서 발견한 것은 건설 분쟁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점이었다. 가장 흔한 사건 유형이 싼 가격을 제시하는 건설업체에게 공사를 맡겼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였다. 계약 후 시공업체는 저가를 만회하고자 시공 중 설계 변경 등 각종 이유를 들어 공사비를 올리고 발주자는 잘 모르니 끌려갈 수밖에 없다. 추가로 여러 번 돈을 올렸으면 시공업체가 공사 기간을 준수하고 품질을 유지해줘야 마땅한데 그러지 못하니 발주자는 돈을 안 주겠다고 하고, 건설업체는 돈을 내놓으라는 소송이 대표적인 패턴이었다. 이와 반대로 의도적으로 돈을 안 주는 등 갑의 횡포를 일삼는 악덕 발주자도 간혹 있었다.



국내의 건설 발주자들은 프로젝트의 규모와 상관없이 싼 것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싼 게 비지떡이라 결과적으로는 공사비가 더 들어가고 공사 기간도 늘어나고 품질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모른다. 막연히 잘 되리라고 믿거나 잘만 관리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미국이나 영국 등은 이러한 저가 발주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미리 간파하여 어떻게 상생을 하면서 프로젝트의 가치를 확보할지에 대한 연구와 실증 프로젝트를 오래 전부터 해왔다. 이같은 생각에 부응하는 대표적 방식으로, 최고 가치 방식의 발주가 있다. 이 방식의 대표적인 철학은 상생이고 발주자와 프로젝트 관여자인 설계업체, 시공업체와 PM업체 등이 힘을 합쳐 프로젝트의 최고 가치를 실현시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는 철학이다. 그래서 그들은 싸다는 이유만으로 업체를 선정하지 않는다.

최고 가치 방식을 시행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영국이다. 벌써 20여 년 전부터 최저가 선정 금지 방침을 정부 조달 방식의 핵심으로 지정하고 감사원이 나서서 정부 발주자가 최저가 발주를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프로젝트 데이터를 통해서 나온 경험은 입찰가를 기준으로 싼 업체를 선정하면 결국 예산이 더 든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건설 혁신 기관인 CE(Constructing Excellence)는, 최저가 방식이 결국 당초 예산을 초과하여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쓰게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오히려 최고 가치 방식이 최저가 방식에서 추가되는 금액을 감안하면 예산 절감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데이터 기반으로 입증하였다. 공사비 절감이라는 개념도 당초 예산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각 프로젝트의 집행 평균치를 기준으로 하여 예산을 초과하여 추가된 금액에 대해 절감한 금액도 절감 금액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가 방식과 최고 가치 방식(VFM). /김종훈 제공


주요 건설 선진국이나 글로벌 기업에서는 설계나 PM/CM 용역을 가격 기준으로 선정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이들이 발주자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컨설턴트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예사롭게, 오히려 많은 경우에 이런 중요한 컨설턴트를 가격 위주로 선정하고 있다. 왜 건설 선진국 글로벌 기업은 PM/CM 용역을 가격 연동하여 선정하거나 프로젝트마다 건건이 선정하지 않고 5년, 10년 동안의 장기적인 파트너 관계로 승격시켜 계약 관계를 맺을까? 이들 발주자들은 싼 것의 병폐를 알고 있으며, 좋은 회사, 좋은 팀, 좋은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낸다는 지극히 간단한 원리를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경영자, 책임자들은 눈앞의 숫자에만 급급하여 용역업체를 최저가 기준으로 선정하고 있다.

또한 이들이 저지르는 인식상의 큰 실수는 동등한 조건의 비교 방식인 애플 투 애플(Apple to apple) 비교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에 따라서는 인건비 차이가 매우 크고 인력의 질도 크게 차이 날 수 있다. 어떻게 휴대폰을 구매하면서, 삼성이나 애플의 고급 휴대폰을 중국의 저가 휴대폰과 나란히 가격만을 비교해서 사는가. 경영 컨설팅 업체를 선정하거나 법률 사무소를 선정하는 경우라면,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선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건설에서는 시공이든 용역이든 가격이 싼 업체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이같은 배경에는 싼 곳을 선정하면 뒤탈이 없고 제일 편하다는 면피 의식도 한 축을 담당한다. 이런 현상이 성행하는 데에는 공급자 측면에도 수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싼 게 비지떡이란 점을 깨우치는 한국의 발주자,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영국, 미국 등 건설 선진국이 그동안 쌓아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최저가의 유혹에 대해 깨닫고 올바른 발주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는 프로젝트보다 실패하는 프로젝트가 많은 이유는 이같은 최저가의 함정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저가 업체 선정은 결국 좋은 팀 선정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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